약학대학의 인기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이 지난 2011년 처음 실시된 이후 해마다 응시자수가 늘어 올해 최고기록을 세웠다.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의 정원이 단계적으로 줄어 그쪽으로 가려던 학생 중 일부가 눈 돌리는 것도 약대 입시생 증가에 일조한다. 다른 대학에 2년 다닌 후 들어가기 때문에 만약 약대 진학에 실패하더라도 재학 중이던 곳에 계속 다니면 되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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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삼동 PEET(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단기학원에서 열린 PEET 고득점 합격전략 설명회. /사진제공=에스티앤컴퍼니 |
PEET 시험과목은 화학·생물 관련 학과생에게 유리해 2016 PEET 접수자의 학과는 생물학(25.2%), 화학(21.8%), 공학계열(24.4%)에 집중됐다. 상위권 학생 중 상당수가 약대로 빠지면서 생물 관련 학과가 약대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만 해준다는 푸념의 소리도 나온다.
입학정원 2000명 수준의 약대가 전국의 모든 이공계 학과를 초토화시킨다는 이야기도 들려 약대의 ‘2+4’제도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노후보장되고 안정된 수입까지
많은 학생이 약대로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안정되게 일할 수 있고 상당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중년의 나이에 시간제 약사를 두고 골프나 치러 다니는 약국 주인을 보면서 다시 태어나면 약대에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노인이 돼도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를 볼 때는 일거리가 없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다른 노인들과 비교된다. 산업의 변화와 경기에 따라 업종의 부침이 심한 경우가 많은데 의약업은 그렇지 않다. 불경기여도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약을 사 먹기 때문이다.
이공계 대학을 잘 다니는 자식에게 부모가 나서서 약대로 옮기라고 종용하는 모습도 본다. 부모로서는 세상풍파 겪은바 자식만큼은 직장에서 잘리거나 사업에 실패할 우려 없이 약국을 운영하면서 안정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딸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여성의 직업으로는 약사가 최고”라고 말한다.
취업 걱정을 할 필요 없고 일하다가 아이 낳은 후 충분히 쉬고 일터로 복귀하는 데 약사만한 직업이 없다고 여기는 것. PEET 접수자 중 여자가 남자의 2배 가까이 되는 점도 이런 이유에서다.
네임밸류가 높은 대학교에 다니다가 네임밸류가 더 낮은 대학교의 약대로 기꺼이 옮기는 사례도 흔하다. 약국을 운영하는 데는 출신대학교가 중요하지 않아서다. 약사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확인하고 약국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2006년 대한약사회 회원 2만7396명 중 약국에 종사하는 약사가 2만2593명(82.46%)으로 압도적이고 ▲의료기관(6.29%) ▲미취업 및 기타(4.90%) ▲제약(4.71%) ▲유통(0.76%) ▲비약업(0.31%) ▲공직(0.29%) ▲학계(0.22%)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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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제 약대 졸업생들이 첫 국가고시를 치르고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
◆6년제 유명무실… 약국 진출 75%
약국 개업과 근무약사에 치우친 약사의 직능이 약대 6년제를 시행하면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예컨대 연구직 공무원 응시자격이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로 제한됐지만 6년제 약사는 석사학위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하는 만큼 공직약사 분야로의 진출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 것.
하지만 약대가 6년제(2+4)로 바뀐 후 올해 처음 졸업한 이들은 대부분 약국에 집중적으로 진출했다. 한국약학교육협의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35개 대학의 6년제 약대 졸업생 1616명의 취업현황은 ▲개국약국(32.6%) ▲병원약국(29.6%) ▲대학원(12.6%) ▲제약회사(8.9%) ▲공공기관(0.4%) ▲기타(16.0%)로 나타났다.
전체 졸업생 가운데 미취업이 포함된 ‘기타’를 제외한 숫자 중 약국으로 진로를 선택한 비율이 75%에 달한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도 약국 약사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아 몇년이 지나면 졸업 직후에 비해 약국에서 일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다.
월급을 받는 약사로 일하다가 약국을 개업해 운영하는 개국약사도 많다. 이는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면서 약대에 진학하는 학생의 연령대가 높아졌고 안정적인 미래를 추구하는 이들이 애초부터 약국이라는 보수적인 목표를 세운 후 진학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6년제 약대를 졸업하는 약사가 나왔지만 근무약사로 인력이 쏠리는 현상이 여전해 약학교육제도를 바꾼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지 못했다. 제약회사 취업이 전체 졸업생의 8.9%에 그친 것은 제약산업의 토대가 되는 인재를 육성하는 데 현재의 제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의약관련제품의 생산, 품질관리 등에도 약사인력이 필요하지만 기피현상이 발생해 구인난을 겪는 제약회사도 적지 않다.
제약회사 취업률이 낮은 원인 중에는 학교에서 실무실습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청년들의 성향과 취업 후 맡는 일의 성격이 다른 경우가 많은 이유도 있다. 지금처럼 표준화된 매뉴얼 없이 이뤄지는 실무실습은 제약회사 업무에 매력을 느껴 제약사 취업을 준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학생들은 기업에서 마케팅, 개발, RA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제약회사는 의약품 생산 등 한정된 업무에 약사인력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운데 약국의 수입은 과거와 달리 위치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했다. 수익합계에서 인건비·재료비·약품비·관리운영비·건물임차료 등 비용합계를 뺀 영업이익이 월 1000만원이 넘는 약국부터 적자인 약국까지 다양하다. ▲대형병원 인접 약국 1087만원 ▲2개 이상 의원 인접 약국 620만원 ▲일반병원 인접 약국 538만원 ▲1개 의원 인접 약국 208만원 ▲주변에 의료기관이 없는 약국 70만원 적자 등이다.
가장 숫자가 많은 약국은 1개 의원이 인접한 약국으로, 매달 영업이익을 직장 연봉으로 환산할 경우 2500만원 수준이다. 그 다음은 2개 이상 의원이 인접한 약국으로 연봉 7400만원에 해당하는 이익을 올린다. 이런 상황을 본다면 제약회사에서 받는 연봉보다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본인의 건강만 허락한다면 노후까지 약국을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은 변함없다.
직원 1명을 두고 소규모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가 편의점의 소화제·감기약 판매 실시 이후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하다 결국 문을 닫는 경우도 봤다. 매출액과 수입이 많은 약국은 권리금이 매우 높아 약국 개설에 상당한 투자금액이 필요하다.
반면 취업은 투자금액이 없는 장점이 있다. 기존 약국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개국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졌고 개국에 드는 비용이 수억원에 달한다는 점은 경제력이 있는 부모를 둔 약대생과 서민가정의 약대생이 똑같은 길로 가기 힘든 현실을 느끼게 해준다.
◆약국보다 다양한 분야 진출해야
약국을 운영하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어 좋겠다고 추측하지만 매일 수백명의 사람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만큼 업무강도가 결코 만만치 않다. 좁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하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거나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관계로 다리가 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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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약물조제만큼 복약지도도 중요하다. 몸이 아파서 신경이 날카로운 환자의 짜증도 잘 받아주고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아픈 증상도 잘 파악해야 한다. 특히 동네에서 약국을 운영하려면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단골고객을 많이 확보하는 수완이 있어야 한다. 새로 출시된 약품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건강·의학 및 식품에 대한 정보까지 꾸준히 습득해야 실력 있는 약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제는 약국 개국이 취업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보다 자신의 성향과 형편을 감안해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이 확대될 때 약사의 전문성이 더욱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약품 인허가 업무와 보건의료정책 분야의 전문인력으로 활동하거나 ▲제약업체에서 기획과 개발을 하며 보람을 얻거나 ▲임상시험과 신약 허가 등을 위해 법적으로 필요한 과정을 추진하거나 ▲병원에서 일반적인 조제가 아니라 특별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의 혈중 약물농도를 추적 관리하고 이상 반응을 점검하는 임상약제 업무수행 등도 모두 소중하다.
분석하는 일에 적성이 맞는 사람은 임상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것을 좋아한다면 비즈니스 세계만큼 매력적인 곳도 없다. 올해 5조원 규모의 초대형 기술수출을 성사시킨 한미약품 창업주 임성기 대표이사는 중앙대 약대 출신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