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원유수출 자율화를 결정했다. 지난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석유수출을 금지한 후 40년 만에 미국 석유가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 한해 하루 50만배럴가량만 수출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5년 12월18일(이하 현지시간) ‘석유수출금지 해제’ 법안에 서명하면서 세계석유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세계석유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높아진 것. WTI 가격이 높아지면 ‘미국 정유업체 수익성 악화→설비가동률 하락→세계 정유공급량 감소→정제마진 강세’가 나타난다.


미국 정유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는 우리나라 정유업체들의 수익성 개선을 의미한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높아진 현재 상황에서는 우리나라 원가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바이유보다 높은 WTI 가격 ‘주목’

오바마 대통령이 석유수출금지 해제 법안에 서명한 당일 WTI 가격은 배럴당 34.7달러로 32.9달러인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1.8달러 비쌌다. 하지만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높고 가격차이도 크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미국이 원유수출 자율화에 나서도 석유수출량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석유수출이 늘어나려면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4~5달러 이상 낮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WTI 가격이 배럴당 40달러를 넘지 못하면 미국 석유생산업체들은 석유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내륙지역(Lower 48 state) 석유생산량은 2015년 6월 이후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WTI 가격이 두바이유보다 크게 떨어지면서 배럴당 40달러를 웃돌아야 하는 조건이 만족돼야 미국 석유생산량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앞으로도 미국 석유생산량이 꾸준히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 정유업체들의 원가경쟁력도 곤두박질 위기에 처했다. 정유업체 입장에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무기가 낮은 WTI 가격이었다. 하지만 현재 WTI 가격은 두바이유보다 높다. 만약 국제유가가 현 상태를 유지하면 미국 석유생산량은 계속해서 감소할 확률이 높다.

물론 석유생산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미국 정유업체들이 90%가 넘는 현 수준의 가동률을 유지하려면 WTI 매입경쟁이 심화되고 당연히 WTI 가격은 오른다. 그러나 WTI 매입경쟁으로 가격이 올라 석유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는 이미 미국의 원가경쟁력이 사라진 이후다. WTI 가격이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보다 크게 웃도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애널리스트는 “미국 정유업체들은 국제유가가 현 수준에서 크게 올라 미국 석유생산량이 다시 늘지 않는 이상 지금의 수익성을 유지할 수 없다”며 “미국 정유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는 자연스럽게 설비가동률 하락으로 이어져 세계정유시장의 공급감소를 불러 오고 또 세계 정유공급량 감소는 정제마진 강세로 나타나 우리나라 원가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미국 수익성 추격하는 아시아 정유업체
지난 몇년간 미국의 정유제품 수출증가로 전세계의 정제마진이 크게 악화됐다. 유럽과 중동 정유업체들은 기존 수출시장을 잃고 아시아로 물량을 넘겼다. 당연히 유럽과 아시아 정유업체들은 지난 몇년간 수익성 악화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WTI 가격 강세에 따른 미국 정유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는 미국 정유제품 가격경쟁력 하락과 수출량 감소로 이어진다. 미국 정유업체들이 밀리는 상황에서 2015년 연평균 정제마진은 전년보다 배럴당 1달러 이상 좋아졌다. 지난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수요 증가와 정유설비 신·증설 지연이 원인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정유업체들의 수익성도 개선될 전망이다. 정제마진이 배럴당 1달러가량 개선되면 우리나라 정유업체들의 연간 영업이익은 1조2000억원가량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저유가로 인해 미국 정유업체들의 유틸리티부문 경쟁력도 약해졌다. 미국은 셰일가스 생산량 증가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이 전세계에서 가장 낮다. 낮은 WTI 가격이 원재료 가격경쟁력의 원천이었다면 낮은 천연가스 가격은 정유설비 가동을 위한 유틸리티 비용경쟁력의 원천이다.

하지만 유가 하락으로 아시아 LNG 수입가격이 하락했다. 이제 천연가스 가격 차이에 따른 아시아와 미국 정유업체들의 유틸리티 비용 차이가 좁혀졌다. 이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낮은 천연가스 가격 때문에 미국의 석유가격이 높아져도 아시아 정유업체들이 미국 정유업체들의 수익성을 따라올 수 없다는 말은 이제 틀린 말”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풍력·태양광발전 세제혜택 5년 연장

미국의 석유수출 금지조치만 해제된 것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12월18일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에 대한 세제혜택 연장법안에도 서명했다. 미국 정부는 생산전력 1kWh당 2.2센트의 세금을 10년간 공제해주는 프로덕션텍스크레디트(PTC)를 통해 풍력발전을 지원한다. 태양광발전은 발전설비건설에 투자한 자금의 30%를 세금에서 공제해주는 인베스트먼트텍스크레디트(ITC)를 통해 혜택을 부여한다.

지난 2010년 이후 미국 태양광발전 수요는 ITC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실제로 유틸리티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할 때 ITC가 있다면 미국 주택용 평균 전력요금 기준으로 내부수익률이 12%에 달한다. 하지만 ITC가 사라지면 내부수익률은 6% 수준으로 크게 낮아진다.

따라서 이 제도가 법안 제정 당시 정해진 것처럼 2016년을 끝으로 사라지면 미국 태양광발전 수요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다행히 풍력·태양광 발전에 대한 세제혜택의 만료기한이 5년 뒤로 미뤄졌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오는 2017년 세계 태양광발전 수요의 가장 큰 불안요인은 미국 ITC 만료였다”며 “미국 태양광발전 투자에 대한 ITC가 연장되면 태양광발전의 중장기 수요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