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원에는 축제가 많다. 그러나 축제의 장을 조금 벗어나 자기 스타일의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하얀 설원의 에너지보다 물안개 피는 호수를, 왁자지껄한 페스티벌보다 자기만의 모험을 즐기는 여행을 떠나본다.

숲으로다리
숲으로다리

◆ 숲으로다리와 꺼먹다리
화천 미륵바위 아래에 차를 세운다. 여기에 다리 하나가 있다. 아니다, 이건 그 다리가 아니다. ‘숲으로다리’는 이 다리 건너에 있다. 무슨, 다리를 보겠다고 다리를 건너나? 물을 건너니 산모퉁이를 따라 길이 나 있다. 이게 바로 ‘숲으로다리’다. 이 다리를 따라 1.2km를 가면 걸음이 숲으로 이어진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 선생이 지은 이름이 참으로 명쾌하면서 동화 같고 예쁘다. 강원도의 걷기길 이름은 ‘산소(O2)길’ 인데, 길 이름과도 썩 잘 어울린다.

숲으로다리
숲으로다리
숲으로다리 가는길
숲으로다리 가는길

숲으로다리는 수상부교이다. 물 위에 뜨는 부교 위에 나무 바닥을 상판으로 얹었다. 다리 위를 걸으면 걸음마다 물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내륙의 바다라고 불리는 파로호, 그 위로 찰랑찰랑 걸을 수 있지만 겨울의 파로호에서는 살얼음을 만날 수도 있겠다. 물 안개라도 깔리면 걷는 기분은 더욱 환상적이다. 연인과 걸으면 참 좋겠다.
숲으로다리가 동화 같다면 꺼먹다리는 대하소설 같다. 꺼먹다리는 화천댐이 준공되고 1945년에 건설됐다. 일제강점기 마지막 해다. 이후 러시아가 들어와 철골을 만들었고 상판은 한국에서 만들어 얹었다. 본의 아니게 3개국 합작이 된 셈인데 그 배경이 전쟁의 상흔이어서 즐거운 협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길이가 204m, 폭이 4.8m,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만든 꺼먹다리는 완성 당시만 해도 일대의 볼거리가 될 정도로 위풍당당한 교량이었다. 한국전쟁 때는 지금의 DMZ인 백암산과 파로호, 화천댐을 연결하는 유일한 교량이어서 주요 보급로 역할을 했다. 당연히 최대의 접전지였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청춘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을 지,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었는지 그 목격자인 다리 역시 역시 총알 자국을 증거로 간직하고 있다.

꺼먹다리
꺼먹다리

꺼먹다리라는 이름은 ‘검은 다리’라는 뜻이다. 상판 나무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콜타르를 발랐기 때문이다. 오래 방치되는 동안 속살이 드러나고 까이고 파였다. 이것을 2007년에 정비하고 또 최근에 다시 손을 봤다. 이름에 맞게 검은 얼굴을 되찾았지만 붉은 철골과 검은 상판이 너무도 선명해 조금 낯설기도 하다. 낡고 녹물이 흘러내린 교량이 70살이 넘은 고령의 다리임을 말하고 있다.
◆ 평화의 댐과 세계평화의 종

꺼먹다리를 보았으니 평화의 댐까지 올라가 보자. 북한의 금강산 댐에 대비해 국민 성금을 모금하며 완성한 댐이지만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리 사건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불명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홍수 조절 기능이 없다는 판단으로 ‘바보댐’이라 불리는 등 무용론이 일곤 했지만 1995년과 1996년 집중호우 때 그 존재감을 드러내 2단계 공사를 거쳐 2005년에 길이 601m, 높이 125m 규모로 완성됐다. 게다가 2002년과 2005년에 북한에서 예고 없이 금강산 댐의 물을 수억톤 방류했는데, 평화의 댐이 그 역할을 해냈다. 댐 자체는 억울함에서 벗어났지만 역사의 숙제는 아직 남아 있다.

평화의 댐
평화의 댐
평화의댐에서 본 전경
평화의댐에서 본 전경

이곳에 세계평화의 종 공원이 조성돼 있다. 염원의 종, 세계평화의 종, 한국전쟁 관련 전시물 등을 볼 수 있다.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댐에서 보는 산천이다. 첩첩산중 너머 어딘가가 금강산일 것이다. 그곳에 아직까지 보지 못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비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갈 수 없으니 그저 머리 속으로 그려볼 뿐이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세계평화의 종을 친다. 말 그대로 평화를 기원하는 타종이다. 겨울산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참으로 길고 중후하다. 그 소리가 파로호를 따라 금강산까지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종을 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세계평화의 종 공원
세계평화의 종 공원
세계평화의 종
세계평화의 종

◆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딴산
평화의 댐에서 내려오는 길에 섬처럼 보이는 조그만 동산 하나가 있다. 이름하여 딴산. 홀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딴산’인데, 머릿속으로는 자꾸 ‘지 딴에 산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우습게 봤나? 이래 봬도 이 작은 산은 금강산이 될 뻔했다. 옛날 옛적에 신선들이 금강산에서 멋진 바위와 봉우리들을 모았다고 한다. 딴산도 그 안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가고 있었는데 미처 도착하기 전에 금강산 1만2000봉이 완성돼 버렸다. 그리하여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이곳에 남았다고 한다. ‘영차, 영차….’ 금강산 봉우리가 되려고 느리지만 작은 발걸음을 옮겼을, 구릉인지 산인지 모를 딴산을 상상하니 참으로 귀엽고 한편으로 가엽다.

딴산
딴산

물가로 내려가면 산은 뚝 하고 반 잘린 듯이 보인다. 80m 높이의 산 한면이 완전한 절벽이다. 여름에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인공폭포가 장관인데, 겨울에는 이곳이 얼음으로 덮여 더 눈에 띈다. 빙벽에 조금 더 가까이 서면 재미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빙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다. 올 겨울은 이상고온으로 빙벽을 오르기에 썩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한파가 반갑다. 소문 듣고 달려온 탐험가들이 로프를 던지고 산을 오른다. 산 위에는 전망대가 있다. 출렁다리 건너 걸어가면 될 것을 참 힘들게도 오른다. 아래서 보는 사람도 이렇게 스릴 넘치는데, 오르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어떤 사람은 천천히 조금씩 오르고, 어떤 사람은 휘청하며 떨어지기도 한다.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구경하고 있자니 바람이 차다. 강원도 칼바람에 강바람을 더했으니 올 겨울 추위는 더 안 만나도 되겠다.

딴산 빙벽 타기
딴산 빙벽 타기

가끔 사고 소식도 들린다. 빙벽 등반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낙빙이다. 깨져 떨어지는 얼음조각에 큰일 당하지 않으려면 안전장비는 필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끝난다면 행운. 모두의 안녕을 빌어본다.
딴산 아래에는 캠핑장이 있다. 시설 좋은 캠핑장이 아니어서 자연 그대로를 즐기는 캠퍼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다. 낮에는 빙벽 타고, 밤에는 강변 텐트에서 머무는 야생의 하룻밤을 맛보고 싶다면 화천 딴산이다.



[여행 정보]

숲으로다리 가는 법

서울춘천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순환대로 - 신북교차로에서 ‘양구, 오음, 아침못길’ 방면으로 우측방향 - 춘양로 - 신북교차로에서 ‘양구, 오음, 아침 ‘못길’ 방면으로 우측방향 - 춘양로 - 신북교차로에서 ‘양구, 오음’ 방면으로 우측방향 - 춘양로 - 배후령터널 - 간척사거리에서 ‘화천, 오음’ 방면으로 좌회전 - 간척월명로 - ‘화천, 먼내골’ 방면으로 좌회전 - 먼내길 - ‘화천, 파로호’ 방면으로 좌회전 - 파로호 - ‘화천’ 방면으로 좌측방향 - 평화로 - 우회전 – 대이리길

[대중교통]
화천공영버스터미널 - 농어촌 2번 버스 승차 - 대이리 정류장 하차 - 미륵바위쉼터까지 도보 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숲으로다리: 검색어 ‘미륵바위쉼터’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333
꺼먹다리: 검색어 ‘꺼먹다리’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656
평화의 댐: 검색어 ‘오죽헌’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2922
딴산: 검색어 ‘딴산’ /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화천관광정보
문의: 033-442-1211 / 화천관광안내소: 033-440-2836
http://tour.ihc.go.kr/

화천 물문화관(평화의댐)
문의: 033-480-1532
이용시간: 오전 9시 ~ 오후 5시 (명저, 매주 월요일 휴무)

● 음식
옛골식당:
화천에 사는 이외수선생이 즐겨찾는 식당으로 유명해졌다. 닭볶음탕 메뉴는 이외수 선생이 좋아하는 요리라고 해서 ‘외도리탕’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졌다. 양푼에 푸짐하게 나오는 메뉴들은 칼칼하게 입맛을 사로잡는다.
동태찌개(2인분) 1만4000원 / 외도리탕 3만5000원 / 오삼불고기 2만원
033-441-5565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중앙로4길 13-3

옛골식당
옛골식당

● 숙박
펜션BnB:
북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펜션으로 화천시내와도 가깝고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평이 좋다. 예약은 필수다.
예약문의: 1899-1205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391-7
http://www.bnbhouse.co.kr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