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대학가에 위치한 한 주택의 반지하방. 대학교 4학년 김모양은 1년 전 값싼 집을 찾아 이곳에 왔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 보증금 500만원을 마련하고 월세는 꼬박꼬박 아르바이트비로 메운다. 매달 빠듯한 살림. 골칫거리는 비단 월세뿐만이 아니다. 여름에는 습기가 차 벽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한겨울엔 외풍이 심해 추위에 떨기 일쑤다. 이런 공간에 홀로 있을 때면 왠지 모를 서러움마저 든다. 더 큰 고민은 보안문제. 주택이 골목 한켠에 자리 잡은 터라 김양의 귀갓길은 매번 공포영화를 방불케 한다. 

#2 도심에 위치한 대형아파트단지. 6개월째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모양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집이 학교와 가까울 뿐 아니라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사는 듯한 집다운 집에 살기 때문이다. 이제 이양에게 집은 고민을 털어놓을 또래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주말이면 넓은 주방에서 함께 요리하고 오후엔 친구들과 영화를 보며 여가를 즐긴다. 밤이 되면 아파트를 산책하거나 주변 맛집에 들러 야식을 먹는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 이양은 집에 대한 로망을 이루는 중이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사는 김양과 이양. 하지만 이들이 매달 집에 지불하는 비용은 40만원으로 똑같다. 이양은 어떻게 같은 돈으로 집에 대한 질적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을까. 바로 ‘셰어하우스’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셰어하우스는 최근 1인가구의 주거대책 중 하나로 떠오른 주거방식이다. 원룸이나 하숙, 기숙사와 달리 말 그대로 거실, 부엌, 화장실 등 공동공간을 함께 쓰면서 사는 형태다. 한지붕 아래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일상과 취미를 함께 공유한다.

셰어하우스는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선 보편적인 주거방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불과 5년 전이다. 아직 시장 상황도 걸음마단계. 그러나 1인가구 증가와 청년들의 주거빈곤이 맞물리면서 셰어하우스 전문업체가 하나둘 생겼고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8 청춘' 이야기] '한지붕 다가족' 셰어하우스
셰어하우스 ‘우주’ . /사진제공=우주
셰어하우스 ‘우주’ . /사진제공=우주

◆ 우주: 보증금 낮춰… 취미 공유하는 공간
‘우주’(WOOZOO)는 대표적인 셰어하우스업체다. 이곳은 2013년 종로 1호점을 시작으로 사업을 확장해 현재 27호점 개점을 앞뒀다. 200명(대학생 60%, 직장인 40%)에 가까운 입주자가 우주 안에서 살고 있다.


우주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콘셉트다.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 ‘요리에 빠진 사람들’, ‘꽃이 좋은 사람들’ 등 주제별 공간을 만들었다. 영화 콘셉트의 집에는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이 구비돼 있고 꽃이 콘셉트인 집에는 매달 꽃배달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입주자의 만족도를 높였다.

이태원점에 산다는 대학생 이동엽씨는 “평소 요리를 좋아해 아일랜드형 주방시설이 크고 깔끔하게 마련된 이곳을 선택했다”며 “함께 거주하는 형들 모두 요리를 좋아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 맛집을 추천하면서 단기간에 친해졌다”고 말했다.

주거형태도 아파트, 빌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종로에 위치한 1호점 ‘창업가를 꿈꾸는 집’은 한옥집으로, 여행이 콘셉트인 강북구 미아동의 6호점은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홍대에 위치한 14호점은 두 집을 이은 구조로 남녀가 함께 사는 공간이다.

입주자들은 거주형태, 콘셉트 등 자신이 원하는 취향에 따라 집을 선택할 수 있다. 저렴한 보증금도 우주의 장점 중 하나. 보통 서울시내 월세방값은 보증금 500만~2000만원에 월세 30만~70만원 수준. 그러나 우주의 월세는 30만~50만원 초반대, 보증금은 월세 두달치에 해당하는 70만~100만원 초반대다. 

우주 관계자는 “대학생들은 500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데 알바비로도 마련 가능한 최소한의 보증금으로 문턱을 낮췄다”며 “보증금 부담을 덜 뿐 아니라 비슷한 또래와 함께 살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부모님과 함께 살 때처럼 집다운 공간에 머물 수 있다는 게 우주의 진정한 가치”라고 말했다.


셰어하우스 ‘머물공’ . /사진제공=머물공
셰어하우스 ‘머물공’ . /사진제공=머물공
 셰어하우스 ‘머물공’ . /사진제공=머물공
셰어하우스 ‘머물공’ . /사진제공=머물공

◆ 머물공: 건강관리는 덤… 마음까지 나눈다
또 다른 셰어하우스업체인 ‘머물공’. 최근 주목받은 이곳은 한의사와 함께하는 라이프케어 집으로 입소문을 탔다. 입주자들은 한달에 2~3번 한의사로부터 개인 몸상태를 체크받을 수 있다. 평소 불편하게 느끼는 증상의 원인을 찾고 나아가 스스로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법도 배운다.

머물공 관계자는 “혼자 살면서 가장 서러울 때가 아플 때”라며 “단순히 주거공간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퀄리티 있는 라이프케어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머물공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공동커뮤니티 활동도 자랑거리다. 1~3호점 입주자들이 분기별로 한번씩 모여 파티를 하거나 심야영화 등을 함께 즐긴다. 올 봄에는 소풍도 다녀올 계획이다. 우주와 마찬가지로 지점마다 다양한 콘셉트를 갖췄다. 여성이 모여사는 2호점의 경우 여행콘셉트로 꾸몄고 남성이 모인 3호점은 ‘즐길락’이 콘셉트다. 스포츠 관련 용품이나 만화책,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구비했다.

3호점에 사는 직장인 장모씨는 “퇴근 후 모여 게임을 즐기거나 치킨에 맥주를 함께 먹으며 친분을 쌓는 중”이라며 “함께 살면 서로 에피소드도 생기고 정보공유는 물론 각자 다른 삶을 이야기하며 공유할 수 있어 좋다”고 만족해했다.

머물공 관계자는 “앞으로도 애견콘셉트, 종교모임, 운동과 취미 등을 다양하게 확대해 오픈할 계획”이라며 “하드웨어적인 집만 세팅된 것이 아니라 추억과 재미가 함께 숨 쉬는 공간으로 커뮤니티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형태의 셰어하우스가 앞으로 청년층의 주거대안 중 하나로 진화할 것으로 본다. 1인가구의 30% 정도가 셰어하우스에 거주할 만큼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지어주거나 대학이 주거문제에 발벗고 나서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셰어하우스가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셰어하우스는 공유를 넘어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국 머물공 대표 인터뷰

['2·8 청춘' 이야기] '한지붕 다가족' 셰어하우스
- 머물공을 간략히 소개해달라.
▶기본적인 셰어하우스와 형태는 동일하다. 다만 부동산 쪽을 맡는 나와 건강관리를 책임지는 한의사, 두명의 공동대표체제로 운영된다.
- 셰어하우스사업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한의사 친구가 혼자 오래 살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고민을 함께 나누던 차에 서로 의기투합해 새로운 형태의 셰어하우스를 만들었다.

- 지점마다 각각의 테마를 설정한 이유가 있나.
▶서로 다른 사람끼리 살면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취미나 일상을 나누면 훨씬 더 재밌게 지낼 것으로 봤다.

- 셰어하우스가 청년주거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나.
▶청년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들이 기숙사 증축 등에 나섰지만 구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기숙사를 확보하지 못한 대학생들은 반지하, 옥탑방으로 떠밀리는데 저렴한 가격에 퀄리티 있는 주거공간을 제공해 만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셰어하우스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물론 셰어하우스 자체가 주거난의 전체적 대안이 되긴 힘들겠지만 한축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셰어하우스, 살아보니 이렇더라

우주에 사는 대학생 이동엽씨와 머물공에 사는 직장인 장모씨를 통해 셰어하우스의 장단점을 들어봤다. 

- 셰어하우스에 오기 전 거주형태는.
▶이: 학교 주변에서 살 집을 찾다 마땅한 곳이 없어 엄청 낡은 곳에서 살았다. 시설 노후화는 물론이고 채광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후배와 둘이 거주했다.
▶장: 울산에 있는 회사 숙소에 거주했다.

- 셰어하우스를 선택한 계기는.
▶이: 살던 집의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했고 인턴을 하게 돼 단기간 살 집을 찾다가 셰어하우스를 알게 됐다. 비슷한 수준의 월세를 내지만 시설이 훨씬 좋아 선택했다.
▶장: 비용대비 주거 퀄리티다. 역세권 주변 아파트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보통 월세의 경우 난방과 보안 등을 걱정해야 하는데 그런 걱정을 한번에 덜 수 있어 좋다.

-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은.
▶이: 시설이 좋은 게 가장 좋다. 자취하면서 낡고 비좁은 데 살았던 적이 많아서인지 이제야 집에서 사는 느낌이다. 형들이랑 사는 만큼 얻어 듣는 것도 많고 친해질 수 있어 좋다. 다만 같이 살다보니 혼자 있고 싶을 때 공간이 없는 점이 조금 불편하다.
▶장: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친해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혼자 살때의 외로움도 이곳에서 만큼은 느낄 틈이 없다. 하지만 역시 개인공간이 없는 불편함이 아쉽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