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와 멕시코 소노라주가 마주보는 국경 도시 ‘노갈레스’. 이 도시 한가운데 8m 높이의 장벽이 있다. 멕시코인들의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1994년 미국에서 설치한 장벽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로 다른 국가로 나뉜 지 오래 됐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갈레스의 주민들은 멕시코 영토든 미국 영토든 국적이나 사는 지역을 떠나 함께 어울려 전통축제를 즐기기도 했다.


[서평] ‘부자나라’로 가는 길

그런데 장벽이 세워지며 양 지역은 완벽하게 단절됐다. 특히 경제적으로 두 지역의 차이는 확연하다. 미국 쪽 노갈레스 주민들의 소득이 멕시코 쪽보다 무려 3배 이상 높다. 실제 이 도시에 가보면 장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도시 분위기가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세월 같은 도시였다가 어느 국가가 관할하는가에 따라서 생활 수준이 극명하게 갈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이 질문이 <부국의 조건>이 나온 계기다.
이 책은 KBS TV에서 2014년 1월초에 방영한 같은 이름의 신년특집 경제대기획 3부작을 기본으로 출간됐다. 물론 이후의 경제 수치 및 변화 상황을 충실히 반영했다. 영상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겼을 때 가장 큰 장점은 자료 사진과 방송화면 사진 등 시각적 요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고 보다 실감나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서두에서 언급한 멕시코와 미국의 차이를 다룬다. 멕시코가 겪는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도자와 정부 관리의 부정부패,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재벌 및 범죄단체 등이다. 그런데 왜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시계 바늘을 오래 전으로 돌려본다면 식민시대 본국의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나아가며 개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 그리고 그 식민지였던 미국. 반면 바다를 호령하며 중남미를 식민화해 세계 최대의 부국이 됐으나 인권의식의 부재와 특권층의 발호로 뒤처진 스페인. 그리고 그 식민지였던 멕시코. 결국 영국과 스페인의 제도 차이가 바로 현재 미국과 멕시코의 차이를 불러온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어 2부는 ‘소수의 탐욕과 권력의 독점’에 초점을 맞춘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하며 내부에서 곪기 시작한 로마, 폐쇄적인 사회로 역행하며 몰락한 베네치아가 그 대표로 나온다. 스페인 왕실의 탐욕과, 결코 평등하지 않았고 비효율의 극치였던 소련, 정경유착과 포퓰리즘적 정치로 추락한 베네수엘라 등의 실패 사례가 2부를 장식한다. 3부에서는 '국가의 운명과 국민 행복을 결정하는 제도의 힘'이라는 부제목 아래 우리에게도 익숙한 선진 국가들의 성공사례를 보여준다.

에필로그는 ‘국민을 위한 제도가 부국을 만든다’는 소제목 아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국민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와 공평한 분배를 제공한 나라만이 부국이 될 수 있다"고 정리한다.


KBS <부국의 조건> 제작진 지음 | 가나출판사 펴냄 | 1만5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