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 HD현대 회장이 "앞으로 닥칠 불황과 위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응책을 마련하라"며 위기론을 꺼내들었다. /사진=HD현대

HD현대가 2분기에도 1조원대 영업이익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권오갑 회장이 사장단을 소집해 강도 높은 위기경영을 주문했다. 단기 실적 호조에 가려진 구조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부진 사업군을 전면 재편할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내부 기강을 다잡는 모습이다.

4일 HD현대에 따르면 권오갑 회장은 전날 주요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열고 "눈앞의 실적에만 편승해 위기의 심각성을 간과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오늘만큼은 솔직하고 진솔하게 본인들의 생각을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HD현대는 올해 2분기 HD한국조선해양 등 주력 계열사의 견조한 실적에 힘입어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거둘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금융정보기업 에프앤가이드가 추산한 HD현대의 2분기 영업이익은 1조1313억원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9000억원대의 영업익이 예상된다.

권 회장이 호실적에도 위기론을 꺼낸 배경에는 조선업의 조기 피크아웃 우려가 있다. 조선 호황기의 정점을 지나면서 수주 가뭄까지 본격화되자 '피크아웃'(고점 이후 하락)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누적 수주는 1938만CGT(647척)다. 전년 동기 4258만CGT(1788척) 대비 54% 감소했다. 한국 487만CGT(113척, 25%), 중국은 1,004만CGT(370척, 52%)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33%, 65% 떨어졌다. 이중 HD한국조선해양의 상반기 수주 실적은 총 76척(105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1척과 비교해 62.8% 감소했다.


조선업은 선박 건조기간이 길어 수주 실적이 곧바로 매출로 연결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2022~~2023년에 대규모로 확보한 수주잔량이 현재 실적을 받쳐주고 있지만, 발주 둔화 흐름이 계속된다면 2~~3년 뒤부터는 매출 감소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중국 조선소의 거센 추격도 위협이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LNG선 등 고부가 선종 시장에 적극 진입하면서 한국 조선업의 수익성 방어를 압박하고 있다. 권 회장이 "앞으로 닥칠 불황과 위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룹의 핵심 현금창출원인 정유사업은 더욱 복잡한 국면에 놓였다. 국제 유가가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데다 정제마진도 지난해에 비해 안정세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수익 예측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심화될 경우 외부 변수에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HD현대의 또 다른 사업축인 건설기계 부문 역시 장기 침체의 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기 둔화로 건설투자가 줄어들면서 장비 수요가 크게 위축됐고 원자재·부품 조달 비용 상승도 수익성을 훼손하고 있다. 특히 북미·유럽 시장의 금리 고공행진으로 건설기계 리스·할부 수요까지 위축되면서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모두 수주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HD현대는 이날 회의에서 하반기 실적 점검과 함께 부진한 사업군에 대해서는 사업재편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즉시 시행하고 중장기 사업계획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뜻을 모았다. 회사 차원에서는 각 사업부별 경영현황 설명회를 통해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임직원과 공유하겠다는 계획이다.

권 회장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일수록 리더들의 역할과 판단이 더욱 중요하다"며 "핵심이 무엇인지, 지금의 인적·물적 자원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가장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해 소신을 갖고 자신있게 행동해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