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3승. 롯데그룹의 경영권 향방을 가를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받아든 성적표다. 반면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은 3차례나 경영권에 도전했지만 모두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신동빈 원리더’로 댓가 기운 셈이다. 하지만 오너일가가 절묘하게 나눠가진 롯데 지분은 신 전 부회장의 지속적인 경영권 도전을 예고한다.

◆‘패배→재도전’ 무한 반복

횡령·배임 및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광범위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에 형제간 경영권 분쟁 장기화라는 내부 악재가 겹쳤다. 한·일 롯데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을 통한 신 전 부회장의 경영권 도전이 계속되는 것.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8월과 올해 3·6월 세차례에 걸쳐 경영권 도전에 나서 모두 패했지만 또다시 도전할 뜻을 밝혔다. 그는 지난달 25일 일본롯데홀딩스 주총 직후 취재진과 만나 “다음 임시 주총에서는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패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한 주총’을 통한 도전을 예고한 셈이다.

실제 한·일 롯데의 지분구조상 신 전 부회장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경영권 도전이 가능하다.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은 ▲광윤사 28.1% ▲종업원지주회 27.8% ▲관계사 20.1% ▲임원지주회 6% ▲투자회사 LSI 10.7% ▲오너일가 7.1% ▲롯데재단 0.2% 등으로 구성됐다. 관계사가 현 경영진(임원지주회)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광윤사, 종업원지주회, 관계사 및 임원지주회가 3대 주요 주주다. LSI는 일본롯데홀딩스와 상호출자 관계여서 의결권이 없다.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신동주·동빈 형제의 개인 지분은 각각 1.6%, 1.4%로 미미한 수준이다.

결국 3대 주요 주주 중 2곳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구조로 신 회장은 종업원지주회와 관계사 및 임원지주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영권을 유지해왔다.


신 전 부회장에게도 광윤사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는 신격호 총괄회장(0.8%)과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10%), 신동주(50%)·동빈(38.8%) 형제가 지분을 나눠 가진 가족회사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아버지로부터 광윤사 지분 1주를 넘겨받아 광윤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대주주(50%+1주)에 올랐다. 일본롯데홀딩스 3대 주요 주주 중 하나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신 총괄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을 두 아들에게 넘겨주지 않고 광윤사, 종업원지주회, 관계사 및 임원지주회 등에게 3분한 것은 능력으로 경영권을 차지하라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절묘한 지분 배분과 후계자들의 능력까지 결합한 독특한 승계시스템은 장기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 신 회장 측은 “신 전 부회장이 회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비난하지만 현실적으로 신 전 부회장의 지속적 경영권 도전을 막을 방법이 없다.


/사진=뉴스1 DB
/사진=뉴스1 DB

◆신격호 치매약 복용…재판 변수

이런 가운데 신 총괄회장의 치매약 복용 사실이 최근 공개돼 경영권 분쟁의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신 전 부회장 측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2010년부터 아리셉트, 스틸녹스, 쎄로켈 등 치매 및 불면증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해왔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 재판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전망이다. 성년후견제도는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재산관리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신 총괄회장의 동생 신정숙씨는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하면서 시게미쓰 여사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 전 부회장, 신 회장,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 5명을 후견인으로 지목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그간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치매약 복용사실이 알려지며 성년후견인이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후견인으로 지목된 인사 중 신 전 부회장을 제외한 4명이 모두 성년후견인 지정을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확률적으로도 신 전 부회장이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앞서 지난 1월 신 회장은 광윤사를 상대로 ‘주주총회 및 이사회 결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의 지분 1주를 취득한 것이 서면으로 제출된 신 총괄회장의 의중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인데 그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 효력이 없는 만큼 법원에 이를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성년후견인 지정은 신 전 부회장의 버팀목인 광윤사 지배력에도 변화를 야기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신 전 부회장 측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불리할 수도 있는 신 총괄회장 치매약 복용 사실을 흘린 이유는 무엇일까.

재계 안팎에선 롯데가 오너일가를 겨냥한 검찰 수사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 롯데가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신 총괄회장의 치매가 인정돼 성년후견인이 지명되면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렇게 되면 신 회장에게 모든 책임을 묻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신 회장이 오너일가 대표로 사법 처벌을 받고 이 틈을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신 총괄회장의 약물 치료 내역이 신 전 부회장 측에 의해 언론에 유포된 것과 관련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의료 내역을 공개한 것은 금도를 넘은 불법 개인정보 유포 행위”라고 꼬집었다. 

롯데가 경영권 분쟁의 키가 사법당국의 판단에 맡겨진 가운데 가늠자가 될 신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는 오는 8월10일 열릴 6차 심리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