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모두가 소신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능률이 오른다고 생각해요. 나이와 직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는 과정에서 새롭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졌고 지금의 칠십이초가 탄생했습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간 칠십이초 사무실의 모습은 ‘한국 회사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분방했다. 클래식음악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자유롭게 대화하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등 다양성이 공존하고 서로가 존중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몇걸음 옮기지 않은 자리에 성지환 칠십이초 대표(40)가 있었다.


“자리가 계속 바뀌고 저는 빈자리에 앉아요. 직원들도 편하게 자리를 옮기고 제 자리도 꾸며주더라고요. 스튜디오룸은 회의실, 편집실, 미술팀 작업실, 음악 작업실로 사용합니다.”


성지환 칠십이초 대표. /사진=김수정 기자
성지환 칠십이초 대표. /사진=김수정 기자

오픈된 공간 한쪽 귀퉁이에 놓인 작은 책상에서 일어나 기자를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성 대표였다. 이 자리마저도 수시로 바뀐다고 귀띔했다. 직원들이 즐겁고 편하게 일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배려였다. 성 대표는 IT분야가 트렌드에 민감하고 즉각적인 의견 공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피드백이 가능하도록 사무실을 오픈형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경쟁력은 ‘퀄리티’… 유튜브 수익구조 다시 쓴 칠십이초


“칠십이초 구성원 모두 능력자입니다. 각 분야의 모든 스태프는 외주 소속이 아닌 칠십이초 직원이죠. 짧게는 2~3년부터 길게는 20년까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좋은 영상을 만들었고 이것이 칠십이초의 경쟁력이 됐습니다.”

칠십이초는 크리에이티브 콘텐츠그룹으로 콘텐츠의 기획부터 각본, 편집, 촬영, 조명, 사운드, 음악, 디자인, 마케팅분야를 모두 망라한다. 최근 이니스프리와 컬래버레이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잘 나가는’ 회사답게 영상 퀄리티를 위한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칠십이초의 권장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지만 오전 11시에 출근해도 무방하다. 본인이 맡은 일만 제때 처리하면 출퇴근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성 대표의 지론이다.


“칠십이초는 콘텐츠 영향력만으로 유튜브 프리뷰 광고에 프리미엄 가격을 받아요. 작품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회사에게 프리미엄 수익모델을 제시한 셈이죠.”


/사진제공=72초TV 캡쳐
/사진제공=72초TV 캡쳐

모바일콘텐츠를 유통하는 IT기업에게 유튜브와 네이버는 수익을 창출하고 구독자와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유튜브는 경매로, 네이버캐스트는 직접 책정해서 프리뷰 광고를 판매하는데 영상에 붙은 광고가 기업의 수익이 된다. 칠십이초는 유튜브가 경매방식으로 판매하는 광고 단가보다 더 비싼 프리미엄 가격에 광고를 판매한다. 그만큼 콘텐츠 경쟁력이 있다는 증거다. 칠십이초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유튜브코리아가 콘퍼런스에서 우수사례로 소개한 것은 성 대표의 괄목할 만한 성과다.

◆실패가 만들어 낸 기적… ‘몽상’을 ‘현실’로 바꾸다


“처음에는 사업이 순탄하지 않았어요. IT업체에 다니다 ‘인더비’라는 공연기획사를 설립했는데 운영난에 시달렸죠. 인더비를 접을 무렵 미리 만들어 놓았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 콘텐츠를 보고 네이버와 CJ E&M에서 연락이 왔죠. 2014년 하반기에 모바일콘텐츠가 막 뜨기 시작하면서 시기가 맞아 떨어졌고 운도 따랐다고 생각해요.”

공연업계에서 일하다가 새로운 콘텐츠를 새로운 방식으로 유통하고 싶어서 만든 게 인더비였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 회사로 5년 가까이 운영했다. 그는 어떻게 공연을 재밌게 할까 고민하다 영상을 만들었고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아야만 근근이 유지되는 업계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고 2014년 11월 회사를 접었다. 회사를 정리하면서 2012년부터 만들었던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게 지금의 <72초TV>다.


“왜 하필 ‘72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1분 내외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어서 붙인 이름입니다. 60초는 재미가 없고 72초가 입에 잘 붙어서 <72초TV>가 탄생했죠.”

성 대표에겐 IT업계에서 문화업계로 넘어올 때 ‘새롭고 즐거운 것을 만들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인생의 목표가 있었다. 성 대표는 ‘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잘 먹고 잘 살기는 힘들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서울대에 입학하고 프로그래머로 5년, IT연구원으로 1년 동안 일하면서 그 일을 평생할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즐기면서 최고가 되는 일을 찾아 늙어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는 성 대표. 그는 10년, 20년 뒤에도 뭐가 더 재미있을까 고민하면서 살고 있을 것 같다.


“너무 똑똑하면 재고 따지느라 사업을 못해요. 계산을 할수록 무모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으니까요. 약간은 무모한 도전을 즐기는 ‘몽상가’가 사업가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모자란 대표와 함께 해주는 똑똑한 직원들이 있었기에 칠십이초의 성공이 가능했습니다. 매 순간 감사합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