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설 극장가는 한국영화 투톱과 그에 맞서는 외화의 습격으로 정리된다. 한국영화 대표는 뭐니뭐니해도 조인성과 정우성, 두 비주얼 가이가 나선 <더 킹>과 현빈·유해진 콤비를 앞세운 <공조>다.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개봉해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관객을 끌어모으는 중. 여기에 쟁쟁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개성 만점의 신작들, 막강한 애니메이션들이 연이어 개봉하며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남자 영화 <더 킹>과 <공조>
<관상>의 한재림 감독이 연출한 <더 킹>은 세상의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의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훑어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태수 역은 <쌍화점> 이후 8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조인성이 맡았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검사가 된 남자가 권력의 화려한 세계를 쫓다 몰락하고 다시 꿈틀대는 과정이 능청스런 풍자를 곁들인 현대사와 함께 어우러졌다.
조인성이 영화의 90% 분량에 등장할 만큼 비중이 막강하지만, 잘나가는 정치검사로 분한 정우성과 그의 충실한 개 노릇을 하는 다른 검사 역의 배성우 등도 함께 돋보인다. 고풍스럽지만 세련된 화면에 검사 3인방의 단체 댄스까지 허를 찌르는 볼거리도 상당하다. 국정농단 파문에 이어진 탄핵정국 속에 맞이하는 이 뻔뻔한 풍자극은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또 다른 감흥을 자아낼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공조>(감독 김성훈)는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된 남북한 형사가 주인공인 버디 액션물이다. 위폐 제작용 동판을 갖고 남한으로 가버린 조직을 소탕하러 온 북한 형사 현빈과 별 수 없이 그와 함께하게 된 남한 형사 유해진이 처음 호흡을 맞췄다. 제대로 이뤄질 리 없는 남북한 공조수사의 와중에 진정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게 된 두 사람의 모습이 남북한 갈등보다 비중 있게 그려진다.
과묵한 남성미에 가공할 전투력을 갖춘 현빈이 액션과 비주얼 담당이라면 능구렁이 같은 입담의 대한민국 가장 유해진이 유머와 인간미를 담당한다. 화려한 액션에 적당한 유머를 갖춘 명절용 킬링타임 영화로 부담 없이 즐길 만하다. 장영남, 소녀시대 임윤아(윤아)의 자매 연기 또한 능청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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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각 사 |
◆좀비 블록버스터 15년만에 대단원
할리우드라고 손 놓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레지던트 이블:파멸의 날>은 화끈한 여전사 액션으로 색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좀비가 창궐한 세계를 배경으로 마지막 희망인 앨리스가 백신을 얻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결전을 담았다. 15년간 시리즈를 이끌어 온 밀라 요보비치에 더해 이준기가 악역으로 특별 출연해 관심이 높아졌다. 밀라 요보비치는 개봉을 앞두고 내한해 무한한 한국사랑을 과시했다.
<딥 워터 호라이즌>은 2010년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를 담은 해양 재난 블록버스터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 재난 참사로 기록된 당시 사건을 마크 월버그, 딜런 오브라이언, 커트 러셀, 지나 로드리게즈 등이 그려냈다. 제작비 1억5000만달러 이상이 투입된 영화로 촬영을 위해 시추선을 실제 제작하는 등 실감나게 사건을 구현했다. 재난 속의 사투와 인간애가 볼거리.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관객을 유혹하는 작품들도 있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은 전세계를 떠돌던 작가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12년 만에야 가족과 만나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켜켜이 쌓아뒀던 마음 속 이야기가 한꺼번에 폭발한다.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매기스 플랜>은 에단 호크와 <프란시스 하>의 그레타 거윅이 보여주는 어른의 로맨스를 그린다. 이혼과 재혼 속에 진짜 성숙한 관계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그려 호평받은 숨은 화제작이다.
<재키>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과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이야기다. 나탈리 포트만이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했다.
◆애니메이션도 한·미·일 대결
한국 애니 <터닝메카드W:블랙미러의 부활>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TV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의 첫 극장판이다. TV판 최강의 악당 블랙미러를 되살리는 한편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고 극장판에 걸맞는 화려한 구성과 볼거리를 더했다.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뽀로로> 극장판마저 사라진 올해, <터닝메카드> 극장판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세워줄 것인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여기에 감성적인 이야기와 수채화 같은 화면으로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흥행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너의 이름은.>과 승승장구 중인 디즈니의 신작 <모아나>가 맞서는 중.
<초속 5cm>, <언어의 정원>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연출한 <너의 이름은.>은 성인들의 눈높이에 가까운 감성드라마로 설 연휴에도 꾸준히 극장가를 지킨다. 몸이 바뀐 도시 소년과 시골 소녀가 뜻밖의 재난과 기적을 만나는 이야기로 개봉 한달을 바라보지만 입소문과 반복관람 덕에 꾸준히 극장을 확보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과 다른 질감의 화면과 색채, 일본 로맨스 판타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모아나>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흥겹게 즐길만한 디즈니표 어드벤처다. 고향 섬이 저주에 걸리자 직접 이를 풀기위해 나선 소녀 모아나의 모험이 귀에 쏙쏙 박히는 노래들과 함께 펼쳐진다. 사랑스럽고도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의 매력이 통통 튀는 가운데 화면 가득한 푸른색이 기분좋은 청량감을 선사한다. 바다와 바람을 관장하는 반인반신 마우이는 할리우드의 액션스타 드웨인 존슨이 목소리 연기를 맡아 흥미를 더한다.
이밖에 <바다탐험대 옥토넛 시즌4:바다 괴물 대소동>,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 등이 어린이용 영화로 틈새를 공략 중이다.
재개봉 영화들도 한 편에 포진했다. 인도산 감동 드라마 <블랙,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 <강렬하고도 우아한 사랑 이야기>,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등 수많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옛 영화들이 설 극장가 틈새를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