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부지수가 전세계 140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75위를 기록했다. ‘2016 세계기부지수(WGI)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별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11위다. 1인당 GDP가 28위로 상위권에 랭크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기부문화는 초라한 수준이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과 미국 여론조사회사 갤럽은 각 나라 국민이 1년간 자선단체에 기부한 금액, 자원봉사 활동시간, 낯선 사람을 도운 횟수 등 세 항목을 조사해 기부지수를 산출한다.

2010년부터 발표된 세계기부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2011년 82위, 2012년 57위, 2013년 45위로 올라가다 2014년 60위로 낮아졌고 2015년에는 하위권인 75위로 주저앉았다.


우리나라 국세청에 신고된 연간 기부금 총액은 2006년 8조1400억원에서 매년 늘어 2013년에는 1.5배 많은 12조4900억원을 기록했다. 개인기부금 총액(7조8300억원)은 법인기부금(4조6500억원)보다 많았지만 증가속도가 상대적으로 둔화됐다. 기부참여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40대, 가장 낮은 연령대는 20대였고 학력별로는 대졸이상, 직업별로는 전문관리직이 가장 높았다.

2014년 기부금 총액은 2013년 대비 4% 줄었다. 기부자 수는 2013년 492만3854명에서 2014년 448만7042명으로 9% 감소했다. 국세청이 집계하는 기부금 관련 자료의 추세가 세계기부지수 순위의 변화추세에 부합된다.

기부정신이 사라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소득수준이 줄고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다지 높지 않았던 기부정신이 더욱 추락할만큼 국내상황이 실제로 힘들어졌을까. 한국의 최근 3년간 경제성장률은 3.0%로 선진국 경제성장률 1.73%를 훨씬 웃돌았다. 반면 한국(75위)의 세계기부지수 순위는 분쟁 지역인 이라크(31위), 시리아(66위)보다 낮다.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으로 국정혼란이 계속돼 지난 3년간 5만4000명이 사망했다. 시리아는 더 말할 나위 없다. 2011년 3월부터 정부군과 반군 사이 갈등으로 내전이 격렬하게 이어져 지금까지 무려 47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190만여명이 부상당했다. 내전으로 많은 사상자가 속출했지만 가동되는 병원은 전체의 절반도 안된다.

이들보다 한국 국민의 기부지수가 더 낮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 우리보다 더 부끄러워해야 할 나라가 있다. 선진국 일본은 세계기부지수 순위가 114위로 바닥에 가깝고 중국은 꼴찌인 140위를 차지했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총체적 문제점이 아닌지 짚어볼 만하다.

◆세계기부지수 1위, 미얀마

세계기부지수 3위는 호주, 2위는 미국이 차지했다. 1위는 놀랍게도 빈민국인 미얀마다. 미얀마의 1인당 GDP는 한국의 20분의1도 안되는 1269달러로 세계 185개국 중 147위에 불과하다. 미얀마는 1962년 쿠데타 이후 50년간 군부정권 통치로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함께 경제제재조치를 받은 바 있다.

세계기부지수 최상위권에는 캐나다(6위), 영국(8위), 아일랜드(9위), 아랍에미리트(10위), 네덜란드(13위), 노르웨이(14위), 아이슬란드(17위), 쿠웨이트(19위), 덴마크(20위), 독일(21위), 스위스(23위), 핀란드(24위), 스웨덴(25위) 등 국민소득이 최상위권인 국가가 포진했다. 하지만 미얀마(1위), 스리랑카(5위), 인도네시아(7위), 우즈베키스탄(11위), 케냐(12위), 부탄(18위), 우간다(26위), 몽골(27위) 등 1인당 GDP 순위가 100위권 밖에 있는 국가도 상당수 포함됐다. 잘사는 국가와 못사는 국가가 혼재한 걸 보면 ‘나눔의 정신’은 ‘잘 사는 정도’와 연관성이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미얀마는 현금기부(1위), 자원봉사(2위), 낯선사람돕기(27위) 등에서 골고루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대다수인 91%가 1년간 자선단체에 기부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자원봉사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55%, 낯선 사람을 도와준 비율은 63%로 나타났다. CAF는 미얀마의 기부지수가 높은 배경으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불교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미얀마 국민 90%가 불교신자다. 종합순위 5위인 스리랑카도 국민의 70%가 불교, 15%가 힌두교를 믿는 국가로 불교정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종합순위가 높은 태국(종합 37위, 현금기부 12위), 부탄(종합 18위, 현금기부 22위)도 현금기부를 많이 하는 불교국가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전체 인구의 약 87%를 차지하는 회교국가로 현금기부가 미얀마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기부문화 발달한 미국, 상위권

종합순위 2위인 미국은 현금기부(13위), 자원봉사(5위), 낯선사람돕기(9위) 등이 모두 상위권이다. 미국은 사회 전체적으로 기부문화가 발달해 육영재단, 구호기금, 후원회, 원호단체는 물론 대학, 교육재단, 연구기관, 장학기금, 병원, 요양소, 미술관, 박물관, 교향악단 등 수많은 공익기관 및 비영리단체가 일반인과 기업의 기부금으로 설립돼 운영된다.


[이건희칼럼] 분쟁국가보다 낮은 기부지수

특정 문화재단과 스포츠재단의 설립자금이 ‘뇌물이냐, 기부냐, 강요에 의해서냐’로 법적 분쟁을 벌이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안타깝다. 스미소니언박물관, 스탠퍼드대처럼 미국의 많은 기관과 단체명은 기부자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대학 내 건물에도 흔히 사람 이름이 붙는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각지에 연구센터와 박물관을 보유하고 교육재단을 운영 중인 스미소니언재단의 기초를 만든 제임스 스미스슨의 행보다. 미국에는 한번도 와본적이 없는 그는 조카에게 미국에 자신의 이름을 딴 교육재단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거금을 미국에 기부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부금을 잘 사용할 국가로 미국을 선택한 것이다. 기부를 사회적으로 장려하려면 기부자가 내면적인 만족만이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한다.

◆달라진 기부개념, 현금 대신 재능

세계기부지수 3위의 호주 역시 현금기부(3위), 자원봉사(11위), 낯선사람돕기(14위) 등에서 상위를 달렸다. 이처럼 종합순위 최상위권 국가는 항목별 순위도 대체로 높지만 강한 항목과 약한 항목의 간극이 큰 나라도 있다. 인도네시아(종합 7위)는 현금기부(2위), 자원봉사(3위) 분야는 최상위지만 낯선사람돕기(104위)에서 유독 순위가 낮았다. 현금기부한 사람의 비율이 75%로 상당히 높고 자원봉사에도 적극적이지만 낯선 사람을 도와준 비율이 낮은 것은 성품이 온순·근면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폐쇄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인도네시아인은 버스를 탈 때 낯선 사람 옆에는 앉지 않으려 한다. 지하철에서도 사람과 떨어져 앉고 눈길조차 주고받지 않는다. 길을 걷다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과 눈을 마주쳐도 이내 양쪽 모두 눈길을 피한다.

쿠웨이트(종합 19위)는 현금기부 30위, 자원봉사 83위, 낯선사람돕기 3위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와 다르게 자원봉사에는 소극적이고 낯선사람돕기에는 적극적이다. 낯선사람돕기 1~10위는 이라크, 리비야, 쿠웨이트, 소말리아, 아랍에미리트, 말라위, 보츠와나, 시에라레리온,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순이다. 이슬람 국가가 10위권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고 손님접대를 극진히 하는 문화와 관련이 깊다.

한국은 현금기부 46위, 자원봉사 80위, 낯선사람돕기 93위로 나타났다. 이해관계가 일치하거나 사상 및 종교가 비슷한 사람끼리는 인화단결이 잘되고 연대의식이 강한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배타의식이 강한 특성이 잘 드러난다.

자원봉사한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1~10위는 투르크메니스탄, 미얀마,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미국, 뉴질랜드, 필리핀, 케냐, 온두라스, 아일랜드 등이다. 2015년 투르크메니스탄 국민은 60%가 자원봉사한 적이 있어 1위에 올랐고 필리핀(종합 47위)과 온두라스(종합 74위)도 자원봉사비율이 다른 항목보다 높았다.

과거에는 돈이나 물건을 대가 없이 내놓는 데 기부의 초점을 맞췄으나 요즘에는 그 개념이 확대됐다. 한국은 현금기부정신도 부족한 편이지만 자원봉사와 낯선사람돕기가 특히 뒤처진다는 점에서 기부의 형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금전적 제공만이 아니라 재능기부나 봉사활동도 상대방에게 큰 도움이 된다. 요즘 대학생들은 방학 동안 농촌에 가서 농사일을 도와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남아국가로도 눈을 돌린다. 현지에 가서 집을 지어주고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이다.

필자의 지인은 가끔 탈북자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걸 도와준다. 현대인은 누구나 바쁘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짧은 시간에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각 지역의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봉사활동을 찾을 수도 있다. 서울시민일 경우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에 접속하면 각 자치구가 올린 자원봉사자 모집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