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순성(巡城)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새벽에 도시락을 싸들고 5만9500척(尺)의 전구간을 돌아 저녁에 귀가했다. 도성의 안팎을 조망하는 것은 세사번뇌에 찌든 심신을 씻고 호연지기까지 길러주는 청량제의 구실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현재 서울은 도성을 따라 녹지대가 형성된 생태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복원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해설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수년간 한양도성을 해설한 필자가 생생하게 전하는 도성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광희문에서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설명하면 이렇다. 광희문을 출발해 성안 광희동과 성밖 신당동, 성안 장충동과 성밖 신당동 및 다산동의 법정동 경계를 따라 장충동 주택가를 관통하면 동호로에 이른다. 동호로 건너 성곽길로 직진하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장충체육관 옆을 지나 장충단공원 안으로 들어선다. 수표교와 장충단비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신라호텔이 있다.


다시 장충체육관 앞으로 나와 다산동 성곽길로 들어간다. 신라호텔 담장 역할을 하는 성곽길을 따라 600m쯤 가면 남산구역 첫번째 암문이 나온다. 암문으로 들어가자. 이제부터 도성 안 성곽길이다. 암문을 들어서면 서쪽으로 내리막골목길이 이어지는데 그 길 북쪽으로는 신라호텔의 후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서울클럽, 민주평통자문회의, 한국자유총연맹(자유센터), 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호텔(구 타워호텔)이 성곽길을 따라 차례로 자리 잡았다.

얼마쯤 올라왔을까. 갑자기 성곽길이 뚝 끊긴다. 남쪽 가까운 곳에 팔각정이 있다. 그곳은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장소다. 그곳 북서쪽으로는 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 골프연습장이 나온다. 팔각정에서 보면 동쪽으로는 신당동과 약수동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남쪽으로는 용산구 한남동 시가지, 서남쪽 남산자락에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이 우뚝 서 있다. 남산 정상에 N서울타워도 보인다.

골프연습장 가장자리에는 사라진 성곽의 자취를 따라 나무로 만든 보행로를 냈다. 그 길로 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 호텔 안으로 들어온다. 늦가을이면 길 아래쪽 계곡의 단풍나무들이 벌이는 축제가 눈부시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왕년의 여배우 같다고 할까. 처음에는 탄성을 발하다가도 곧 처연한 심사에 젖는 것은 그런 정감 때문일 것이다. 도심 속 아늑하고 호젓한 산골짝에서 마지막 정염을 불태우는 계절을 즐기려고 연인들이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광희문. /사진제공=중구청
광희문. /사진제공=중구청

호텔 본관 후면 축대에 성곽의 흔적이 보인다. 호텔 뒷문 가까운 고개에는 옛 남소문터가 있다. 호텔 아래로는 자유센터가 자리 잡았다. 호텔 정문을 나오면 국립극장사거리다. 여기서 바로 남산정상으로 오를 것이 아니라 국립극장 뒤로 돌아 석호정(石虎亭)을 보고 간다. 다시 사거리로 나온다. 사거리 바로 위 남산매표소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표시가 도로에 박혀있다. 그 지점에서 동쪽 기슭의 나무계단을 올라 구름다리를 건너면 남산 정상에 이르는 탐방로로 이어진다. 다음부터는 길을 잃을 리 없는 코스다.
남산공원 정류장에 이르면 N서울타워가 거인처럼 우뚝 서 있다. 남산팔각정을 지나 목멱산봉수대 터를 지난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다. 잠두봉 포터아일랜드로 내려온다. 목멱산 중턱을 따라 내려오면 남산 회현자락 발굴현장이 나오고 이어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는 안중근의사광장(옛 중앙광장)이다. 그 아래로 백범광장이 나온다. 광장 한편에 성제 이시영 선생 동상이 있다. 가까이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이 보인다. 아동광장으로 내려간다. 조금 더 내려오면 SK남산빌딩 옆이다. 드디어 한양도성 제2구간의 종착점인 숭례문에 도착한다. 이것이 남산 구간의 진로다. 그럼 이제부터 답사를 시작하자.


◆광희문에서 동호로까지

2010년 6월28일 도로명 변경 이전 지도를 보면 성 안쪽으로 광희문에서 명사길까지 100m쯤 이어지는 길을 수구문길이라 불렀는데 그 이후 퇴계로68길로 바뀌었다. 성 밖 금호동길은 2011년 1월24일 청구로로 바뀌었다. 이 구간은 성곽의 안팎에 잔디밭을 꾸몄다. 현재의 도로명을 따라 광희문에서 성안으로 퇴계로68길 주택가를 따라 남진하면 장충단로10길(옛 명사길)에서 성곽이 끊어진다.

이 지점에서 성곽은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광희동2가와 신당동 법정동 경계가 이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튼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법정동의 방향이 꺾인 지점은 도성 밖으로 돌출된 치성의 흔적이다. 현재는 장충단로10길(옛 명사길) 건너 바로 앞 골목길 입구에 동그란 성곽길 표지가 보인다.


동호로와 장충체육관. /사진제공=허창무 한양도성 해설가
동호로와 장충체육관. /사진제공=허창무 한양도성 해설가

그 골목을 따라 30m 정도 들어가면 장충단로8나길 표지판과 만나고 그 옆 전봇대에 부착된 성곽길 표지가 보인다. 장충단로8길 골목길로 직진을 계속하면 골목 끝에서 돌계단과 마주치고 돌계단 서쪽 주택가 담장 끝 부분에서 성곽유구를 볼 수 있다. 돌계단 아래로는 장충단로8길(옛 장수길)이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데 그곳에서 10여m 정도 동쪽으로 가서 장충가든빌라를 끼고 남쪽 길로 방향을 틀면 오른쪽 전봇대 앞에 천주교신당동교회의 방향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가 속칭 ‘성당길’로 불리는 동호로20길의 시작이다.
성당길을 따라 남쪽으로 20m쯤 내려가면 동쪽 주택가 막다른 골목 안 남쪽으로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공터 끝 주택 사이 동쪽 담장에 숙종 때의 성곽유구가 보인다. 성곽유구는 이곳으로부터 성당길을 따라 주택가 막다른 골목 안 주택너머로 숨바꼭질하듯 약 150m가 이어진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심정이랄까. 성돌 유적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구간의 성곽 흔적은 세종 때와 숙종 때 축성된 것이다. 이 구간은 장충동1가와 신당동 법정동 경계인데 2013년 7월20일 행정동 명칭이 바뀌며 성곽 밖 신당2동은 다산동이 됐다.

동호로20길(성당길) 중간쯤부터 길은 동쪽으로 비스듬히 구부러지며 낮은 언덕을 이룬다. 이른바 장충동부자촌의 시작지점이다. 성북동·평창동·한남동 등과 함께 이곳도 서울의 대표적인 부자촌이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저택도 이곳에 있다. 부자촌에서부터 성곽유구는 사라진다. 대저택들이 성곽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장충동의 부자들이 강남으로 이사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의 명성이 빛을 잃었다. 지금은 대저택이 헐린 자리에 빌라가 들어섰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