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환원, 사회공헌 등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의 재단법인. 이들 공익재단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끝 앞에 섰다. 공정위는 다음달부터 재벌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공익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배경이 공익사업을 위한 것인지, 오너 일가의 상속을 위한 통로인지 따져보겠다는 것. 이에 <머니S>가 기업 공익재단의 두 얼굴을 파헤쳐봤다.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판매하는 행위로 수익을 남기는 주체다. 하지만 기업의 역할은 단순히 수익을 남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는 기업에게 ‘환원’을 요구한다.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문화예술이나 사회적 약자 지원, 인재양성 등 사회의 공동발전을 위해 쓰라는 얘기다.

기업은 사회환원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기부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보다 의미 있는 사회공헌을 위해 기업내부에 전담부서를 만들거나 별도의 ‘공익재단’을 설립하기도 한다. 기업의 공익재단 조성은 가장 적극적인 사회공헌방식 중 하나다.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5대기업은 물론 포스코·GS·한화·두산·CJ 등 웬만한 대기업집단도 1개 이상의 공익재단법인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최근 여론은 공익재단의 다른 얼굴에 주목한다. 공익재단이 사회환원이 아니라 총수일가의 기업자산 유용을 위해 존재한다고 의심한다. 실제 공익재단이 총수일가의 지배권 강화와 승계를 위한 편법에 동원된 정황은 수없이 많다. ‘재벌 적폐 개혁’을 위해 칼을 뽑은 김상조호 공정거래위원회가 칼끝을 공익재단에 겨눈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공정위에 신설된 기업집단국은 다음달부터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다.


[공익재단 '두 얼굴'] 기업 '편법 적폐' 뿌리 뽑을까

◆시민단체, 수십년간 ‘공익재단 문제’ 지적

우리나라에서 공익재단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시민단체에 의해서다. 참여연대는 약 20년 전인 1998년 발간한 <공익재단법인백서>라는 책에서 30대 재벌기업이 설립한 공익재단을 비판적으로 해부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재벌기업 계열 공익재단법인의 설립시기가 대체로 2세로의 재산상속 및 경영권승계 시점이거나 5·16, 유신말기, 1980년대 초 등 재벌기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던 시기”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공익재단법인의 설립부터 재벌총수의 변칙적인 상속이나 증여, 기업공개 압력 회피 등을 위한 수단과 연계됐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입법에 일부 반영돼 상속증여법상 다양한 조항이 생겼지만 기업이 공익재단법인을 편법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근절하지 못했다. 이들 공익재단 상당수가 공익사업을 시행한다는 명분으로 상속세와 증여세 등 세제혜택을 받으면서 재벌총수의 사익에 복무한 셈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공익재단에 출연하면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 또는 출자총액의 5%까지 상속 또는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시민단체는 공익재단 이사장 대부분이 재벌기업 총수 또는 특수관계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재벌총수는 계열사 주식을 공익재단에 출연함으로써 한푼의 증여세도 부담하지 않고 최대 5%까지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이사장직을 양도하면 계열사 지분의 최대 5%까지 상속 또는 증여세 부담 없이 상속·증여하는 효과가 발생해 특정인에게 경영권과 재산을 넘겨줄 수도 있다.


1999년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단장으로 시작해 최근까지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역임하며 20여년간 재벌개혁에 몰두했던 김상조 위원장이 대기업 계열 공익재단을 재벌개혁의 시발점으로 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공익재단 '두 얼굴'] 기업 '편법 적폐' 뿌리 뽑을까

◆최근 삼성·금호 사례가 시발점
재계에선 2015~2016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과정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과정에서 불거진 공익재단 이용 편법논란이 공정위가 공익재단을 조사하는 도화선이 됐다고 여긴다.
당시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았던 김 위원장은 2015년 5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될 때부터 우려를 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당시 논평에서 “삼성그룹 3세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공익재단을 이용한 상속세 절세에 대한 우려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공익재단의 이사장직을 맡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공익재단을 절세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를 해선 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우려는 불과 7개월 만에 현실이 됐다. 이 부회장의 공익재단 이사장 취임 직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삼성그룹은 신규 순환출자고리가 형성됐고 삼성생명 공익재단은 지난해 2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SDI가 보유한 3000억원 규모의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였다. 연대는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무리한 합병이 신규 순환출자 형성으로 이어지고 법을 위반하는 결과가 되자 공익법인의 재산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호그룹의 금호산업 인수과정에서도 다른 양상으로 공익재단 악용사례가 나타났다.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금호기업에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하 금호재단)과 죽호학원 등 금호그룹 계열 공익재단법인이 650억원을 출자한 것.

금호재단이 400억원, 죽호학원이 150억원을 각각 냈고 이 두 재단이 지분을 전량 보유한 케이에이·케이에프·케이아이가 100억원을 출자했다. 공익법인 고유의 목적으로 사용돼야 할 자산을 지배주주의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 확보 및 유지를 위해 사용한 셈이다. 특히 국세청에 신고된 공익법인 공시를 보면 인수를 앞둔 2014년 금호사옥과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등 그룹 계열사들이 금호재단에 기부금을 크게 늘려 인수에 대비한 정황도 찾을 수 있다.

특히 당시 박 회장이 채권단으로부터 인수하기로 한 금호산업의 주식이 경영권을 포함해 주식실제가치의 3배에 달했던 것은 더 큰 문제다. 당시 연대는 “박 회장 등은 금호산업을 통해 금호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어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할 유인이 있지만 공익법인 및 그 완전자회사들은 이처럼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며 박 회장 등 금호재단과 죽호학원 이사 19명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금호그룹 외에도 대기업의 공익재단을 활용한 편법 행위는 수없이 많다”며 “공정위의 이번 전수조사가 이 같은 악행을 뿌리 뽑고 구조적 해결책을 모색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5호(2017년 11월22~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