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하는 이승찬 제주도 관광국장. /사진제공=제주도청
기자회견하는 이승찬 제주도 관광국장. /사진제공=제주도청

제주발 국제선이 최근 항공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인한 중국인관광객 감소로 직격탄을 맞은 제주도는 중국인 수요 집중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관광수요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연결을 위해 항공사에 매력적인 조건을 내세우며 항공노선을 유치하려 애쓴다. 지속적인 노력으로 제주도는 최근 여러 국제선 유치에 성공했지만 불안요소는 남아있다. 제주공항 포화가 심화돼 황금시간대 증편이 어렵기 때문이다.


◆ ‘동남아 직항’ 유치 사활 건 이유
제주발 국제선은 그간 여객 수요가 적어 수익성이 낮은 노선으로 여겨졌다. 특히 제주에서 외국으로 출국하는 아웃바운드 수요가 적어 항공사들이 취항에 소극적이었다. 따라서 제주발 국제선은 사실상 수요 확보가 가능한 일본과 중국 노선만 운영해 왔다. 항공사들은 정기선보다는 여행사와의 협업을 통한 부정기선 취항에 주력했다.

하지만 최근 항공업계엔 제주발 국제선 취항 바람이 분다. 지난 3월 타이완 타이거항공이 제주-타이베이 노선을 취항했고 홍콩익스프레스와 캐세이드래곤은 제주-홍콩 노선을 각각 증편했다. 동남아시아까지 직항 노선이 연결되기도 했다. 국적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이 최근 제주-방콕 노선에 복항한 것. 약 1년 만의 노선재개다.


지난 12일에는 아시아 최대 LCC인 에어아시아그룹이 제주공항에 취항했다. 에어아시아그룹은 장거리 항공사인 에어아시아X를 통해 제주-쿠알라룸푸르 노선을 열었다. 동남아시아 항공사가 제주도에 직접 취항한 것은 최초다.

항공사들의 제주발 국제선 취항은 제주도의 관광수요 다변화 노력의 힘이 컸다. 특히 제주도는 에어아시아X 노선 유치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올 초 제주직항유치단을 구성하고 에어아시아X 본사를 방문해 취항을 지속 요청·협의했다는 게 제주도 측의 설명이다.

지난 13일 제주 시티호텔에서 열린 에어아시아의 제주-쿠알라룸푸르 노선 취항기념 간담회에서 이승찬 제주도 관광국장은 “현재 연간 제주를 방문하는 말레이시아 관광객 규모는 중국과 홍콩에 이어 세번째 수준”이라며 “쿠알라룸푸르 제주 홍보사무소에서 설문조사 등을 실시했는데 직항 노선이 생기면 충분히 많은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도 이 노선의 성공을 확신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로하나 람리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는 “에어아시아 제주 직항 노선이 생기며 말레이시아 신혼부부들에게도 훌륭한 신혼여행지가 될 것”이라며 “이번 에어아시아X 취항으로 연간 6만여명에 그쳤던 말레이시아 관광객이 12만여명 이상으로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시아 최대 LCC인 에어아시아가 취항한 것의 의미는 말레이시아 관광객 유치에서 그치지 않는다. 라피다 아지즈 에어아시아엑스 회장은 “에어아시아그룹은 세계 각국에 허브를 두고 있다”며 “이번 취항은 중동, 호주, 뉴질랜드 등의 관광객이 제주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 취항한 에어아시아X항공기. /사진제공=에어아시아X
제주 취항한 에어아시아X항공기. /사진제공=에어아시아X
대만 타이거항공 제주 첫 취항 기념행사. /사진=뉴스1 DB
대만 타이거항공 제주 첫 취항 기념행사. /사진=뉴스1 DB

◆ 인프라 확보 필요성 커져
다양한 여객수요를 유치하며 승객 다변화에 희망이 생겼지만 아직 불안요소가 크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제주공항의 포화다. 지난 10여년간 여객수요가 늘어나면서 항공사의 제주도 취항 자체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해 기준 제주공항의 연간 이용객은 3000만명으로 현재 제주공항의 여객처리능력(2589만명)을 초과한 상태다.

특히 슬롯(항공기 이착륙 허용능력) 문제가 심각하다. 항공기 운항 편수가 많아 현재 제주공항에서는 1분43초마다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거나 이륙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지난해 제주공항의 슬롯 초과 항공기 운항 횟수가 415회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에어아시아도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제주공항 슬롯배정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제주도의 아웃바운드 수요가 적어 제주 노선에서 탑승객을 확보하려면 환승 수요를 적극 유치해야 하는데 제주공항의 슬롯이 타이트해 환승 수요 유치에 불리한 시간대를 배정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벤야민 이스마엘 에어아시아X CEO는 “노선 취항 과정에서 공항공사 측이 많은 측면에서 배려를 해줬지만 시간 배정은 아쉽다”며 “내년 1월 협의회에서 취항 시간이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공사간 슬롯배정은 민감한 사안이어서 에어아시아에게 원하는 시간대를 배정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 큰 문제는 이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제주도와 공항공사는 내년 말까지 제주공항 단기 인프라 확충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처리능력 증가보다 항공수요 증가가 더 클 것으로 예상돼 이 같은 문제는 반복될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인 제2공항 사업 역시 반대에 부딪혀 표류 중이다.

공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맞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너무 많은 인프라가 중국인 단체관광에 맞춰 구성돼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이 국장은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을 확충하는 등 인프라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고 현재 6개에 불과한 할랄 프렌들리 식당도 7개 추가인증을 진행 중”이라며 “개별관광객 여행편의를 위해 공항기점 대중교통을 강화하고 관광지 순환버스를 운행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중국의 단체관광 금지령이 해제돼 다시 수많은 중국관광객이 몰려들면 공항이나 국내 여행업계가 동남아시아 수요를 등한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주도 여행업 관계자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재개되더라도 노선다변화 목표를 세운 만큼 양적 성장보다는 관광객 다변화 목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9호(2017년 12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