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강산 기자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강산 기자
"늙어도 투표해야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한 할머니(86)는 '투표소 오기 힘들지 않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종로구 인근에서 거주한다는 이 할머니는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더 키웠으면 좋겠다"면서 "투표는 미래를 위한 권리이자 선물인 만큼 몸이 아파도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2시쯤 투표소 밖에는 20명가량의 유권자가 있었다. 대학생, 직장인, 부부, 의경 등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서 투표를 하러 들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팡이를 짚는 할아버지, 폐품 리어카를 끌고 온 할머니, 휠체어를 탄 할머니 등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보였다. 힘들지만 투표를 하려는 이들의 의지에 코끝이 찡해졌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밖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사진=강산 기자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밖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사진=강산 기자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거주하는 이모씨(남·71)에게 사전투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다음 세대를 위해 하루 빨리 투표해야지. (투표를) 미뤄서 뭐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걸을 수만 있으면 투표해야지. 실업률이 역대 최악이라고 하던데 기자는 살만해?"라고 되묻기도 했다.
성인이 돼 투표권이 생긴 뒤 진심으로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한마디였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투표를 게을리한 그간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주민센터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한다는 박모씨(남·81)에게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투표는 권리고 반드시 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사회에) 바라는 것과 청년, 직장인이 느끼는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투표를 통해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고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훗날 인생의 후배들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메시지로 들린 순간이었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안에 사람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강산 기자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안에 사람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강산 기자
사전투표소 안으로 이동했다. 이날 오후2시 '머니S'가 투표소를 찾았을 때 20명가량의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투표 특성상 본인의 지역구가 아니더라도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인은 크게 관내선거인과 관외선거인으로 나뉜다. 유권자는 신분증을 사전투표사무원에게 보여주고 지문을 찍으면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다.

줄을 선 유권자들은 저마다 누구를 뽑을지 고민하는 듯했다. 후보와 관련해 지인과 대화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 말없이 초조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안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강산 기자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안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강산 기자

투표에 참가하는 젊은층은 어떤 마음일까. 부모님과 함께 투표소에 왔다는 김수미씨(가명·30대 후반)는 "날이 더워도 미리 투표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사전투표를 하러) 왔다"면서 "사실 어머니가 가자고 하셔서 오게 됐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어 "휴일인 오늘 사전투표하러 오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고 평소와 다르게 어머니와 정치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같이 투표소에 오니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종로에 스터디를 하러 왔다는 대학생 이모씨(남·23)는 "투표지에 '여성 공무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적고 나왔다"면서 "(어르신들도 투표하는 모습에) 대학생으로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고 내가 말한 의견은 기권표가 되겠지만 국민으로서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스스로 뿌듯할 수 있지만 기표 후에 투표지에 낙서를 하거나 다른 기호를 기입하면 무효표가 되는 만큼 조금 아쉬운 방법이었다. 특정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에 맞설 후보를 뽑는 것도 요령이 아닐까 싶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 놓여 있는 폐품 리어카. /사진=강산 기자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 놓여 있는 폐품 리어카. /사진=강산 기자
오후3시쯤 취재를 마치고 투표장 밖으로 나왔다. 사전투표가 세 시간이 남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투표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동하는 발걸음 틈에서 홀로 놓인 수레가 눈에 띄었다. 기자가 한 시간 전에 봤던 할머니의 수레였다. 자리에 그대로 놓인 모습에 할머니의 투표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주인 없는 이 수레가 무언가 '목소리'를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투표가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행위이고 시간낭비일 수 있지만 폐지를 줍는 이 할머니에게는 하루 일당을 대신할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던 점을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투표권은 소중한 것이며 고귀한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한 할머니의 수레. 앞으로 선거 때마다 이 수레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