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자본시장 화두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다. 실물 화폐에 1대1로 가치를 고정한 디지털 자산이어서 코인 발행사는 발행 규모만큼 달러 따위의 화폐 또는 해당 국가의 국채 등 실물 준비금을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 송금이나 결제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서 암호화폐 거래소의 '기축통화'로도 불린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에 따라 '현금 없는 세상'이 현실이 됐고, 이런 환경에서 기존 실물자산 중심의 금융 시스템 한계를 극복할 방안으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 가상자산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원화'를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과 함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가상자산의 도입과 활용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는 추세다. 관련 업계는 이를 반기고 있다.

이처럼 '결제가 가능한 가상자산' 도입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정부 부처의 힘싸움도 시작됐다. 저마다 유리한 부분을 앞세우면서 이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은행은 CBDC를 앞세웠고 금융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과 함께 토큰 증권(STO)도 언급한다.

현재 가상자산을 둘러싼 정부 부처의 영역표시는 과거 전기자동차를 준비하던 상황과 닮았다. 자동차 등 이동 수단을 관할하는 건 국토교통부고, 이를 움직이는 동력원인 에너지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담당한다. 이 구도는 꽤 오랜 시간 유지됐다.


그러다가 '친환경'이 글로벌 화두로 떠오르면서 환경부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국토부나 산업부에 견줄 만큼은 아니었지만 2016년 이후 이른바 디젤게이트 사태를 겪으면서 서둘러서 전기동력화(전동화) 카드를 내밀었다.

이때부터 전기차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구매보조금을 책정,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챙기는 건 환경부다. 게다가 전기차를 충전하는 충전소도 사실상 환경부 소관이다. 국토부·산업부에 이어 환경부도 자동차를 직접 다루는 주무 부처로 격상한 것이다. 여기에다 첨단기술이 집약되고 자율주행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이 더해지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숟가락을 얹었다.

현재는 신차 하나를 내놓으려면 이처럼 수많은 정부 기관을 상대해야 한다. 심지어 각 부처의 사각지대에 놓인 탓에 규제가 마련되지 않아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나 제품이 도입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한 곳에서 승인받더라도 다른 부처 승인이 늦어지면 시장에서 타이밍을 놓칠 우려도 제기된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예외를 두기도 하지만 기술의 발전속도와 시장의 요구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에선 미래모빌리티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선 '자동차청' 등을 신설, 연관된 기능과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의 상황을 보면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는 아닌데 일종의 화폐처럼 여겨지고 주식처럼 사고팔면서 투자의 개념으로도 여겨진다. 그런데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서 투자자 보호라는 가장 중요한 점도 놓치고 있다.

이에 안전성을 강화한 가상자산을 활용해 기존 시스템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가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이다. 결제 등 실제 사용이 가능해야 하면서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도 쏟아진다.

CBDC는 금융 안정성과 법정통화 신뢰 등 결제 최종성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기존 화폐의 기능을 디지털로 확장한 것이어서 한국은행이 힘을 주는 상황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혁신 속도, 크로스체인 호환성이 강점이어서 확장성 면에서 유리하다. 핀테크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금융위원회가 버티고 있다.

각각의 개념은 장단점이 분명해서 정부 부처도 경쟁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학계와 업계에서도 두 가지 방식을 섞은 '투 트랙' 형태를 제안하는 배경이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운 기술·제도의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기에 정부 부처가 힘겨루기에만 집중하면, 그사이 시간이 낭비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특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국내 기업이 해외자본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악의 상황엔 국가 결제 수단 관련 위험을 관리할 주체를 외국 기업에 넘겨주는 꼴이 된다.

4차산업의 핵심 가치는 '융합'이다. 밥그릇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마다의 밥그릇을 모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싸움이 커지면 밥그릇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가상자산은 먼 미래가 아닌 현실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박찬규 머니S 증권부장 /사진=김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