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린 영상을 19억명이 시청하는 짜릿함. 유튜브가 미디어플랫폼의 포식자가 되어 새로운 직업을 낳았다. 유튜버는 이미 초등학생들의 워너비 직업으로 등극했고 회사원, 중년층 등 많은 이들의 이직, 은퇴 대안으로까지 여겨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에 우리는 아직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 <머니S>가 신종 직업으로 각광받는 유튜버에 대해 진단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왜 유튜버에 열광’하는 지, 유튜버가 과연 어느정도의 수익을 내는지 알아봤다. 또 부작용을 몸소 체험한 유튜버의 이야기도 들어봤다.<편집자주>


유튜버 공식 팬행사 모습. /사진=뉴스1 DB
유튜버 공식 팬행사 모습. /사진=뉴스1 DB


[유튜브에 갇힌 대한민국-상] 너도나도 열광하다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순위는 시대가 어떤 직업을 우러러보는지를 보여줬다. 1990년대만 해도 장래희망 상위권에는 의사, 변호사, 과학자 등이 자리하며 이런 직업군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고 '훌륭한 사람'이란 대개 의사나 과학자였다.
그런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에 생소한 직업이 등장했다. 바로 유튜버(인터넷방송진행자)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실시한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에서 유튜버가 5위로 첫 등장했다. 최근 1인 방송 열풍이 불며 유튜버 혹은 크리에이터가 아이들의 꿈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비단 아이들의 꿈만은 아니다. 최근 대학생, 직장인, 은퇴자, 고령자 할 것 없이 유튜버의 세계에 뛰어든다. 전세계 이용자 19억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동영상을 찍으러 오늘도 많은 유튜버가 방에서, 야외에서 콘텐츠 제작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유튜버에 대한 사회적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콘텐츠 제작을 위해 엄마의 속옷까지 찍어서 올리는 초등학생이 등장했으며 직장인들도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얘기에 일터를 버리고 방송장비 구입 삼매경에 빠졌다. 이러다간 '10년 후 대한민국 직업은 유튜버 밖에 남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옆집 초딩'도 유튜버인 시대




◆너도나도 ‘유튜버’… 병드는 사회
"엄마, 나도 유튜버할래.“


부모들에게 유튜브는 고마운 존재다. 우는 아이, 심심해서 떼쓰는 아이를 가장 손쉽게 달랠 수 있는 매개체여서다. 아이들은 유튜브만 틀어주면 순한 고양이 마냥 시선을 영상에 고정시킨 채 조용해진다. 하지만 부작용이 잇따랐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보기 시작했고 유튜브 속 세상이 전부인양 그곳의 모든 것을 동경한다. 결국 직업 유튜버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지고 있다.

유튜버가 각광받기 시작한 지 불과 몇년이 지나지 않았다. 초등생 유튜버가 등장하며 부작용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초등생 유튜버 ‘띠예’다. 띠예는 '바다포도 ASMR'(자율감각 쾌락 반응·소리를 강조한 영상 콘텐츠) 등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리를 콘텐츠화한 영상으로 88만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가 됐다. 띠예가 음식을 먹고 내는 소리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열광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영상속 소리가 선정적이라고 유튜브 측에 신고하기 시작했고 띠예의 동영상에는 차마 입에 담긴 힘든 악성댓글이 달렸다. 유튜브 측은 결국 13세 미만 유튜버의 영상에는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조치했다.

유튜버 띠예의 방송 모습./사진=띠예 유튜브방송 캡처
유튜버 띠예의 방송 모습./사진=띠예 유튜브방송 캡처

문제는 '띠예 사례'가 초등생 유튜버 유입을 더욱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일부 부모들은 88만명에 달하는 띠예의 구독자에 집중했다.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가 먹는 소리만으로 88만 구독자를 유치하니 오히려 '내 아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8살 유튜버 '라이언'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영상으로 1년간 240여억원을 벌어들였다. 유튜브 측도 초등생, 혹은 미성년 유튜버의 활약이 도드라지자 아예 '유튜브 키즈'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유튜브 키즈에는 하루에만 100만여개의 동영상이 업로드된다. 조회수도 5억회가 넘었다. 수익에 매몰돼 아이들을 내세워 콘텐츠를 만드는 부모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나친 초등생 유튜버 유입에 대한 문제점은 또 있다. 한 초등생 유튜버는 엄마의 속옷을 훔치는 콘텐츠를 제작했다. 또 다른 초등생 유튜버는 길에서 담배 피는 척 연기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사실은 막대사탕이지만 어른들의 반응을 영상에 담은 것이다. 자극적인 영상을 찍어 조회수팔이를 하려는 초등생들의 등장은 결코 우리사회가 반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공장서 일할 노동자도 필요“

정해진 근로시간동안 일하는 전통적인 노동개념도 유튜버 앞에서 무너진다. 출퇴근을 통해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도 유튜버 맛을 아는 순간 회사를 때려치우기 일쑤다. 최근 V-LOG(브이로그·일상생활 콘텐츠)가 각광받으며 일상생활을 촬영하는 영상이 인기다. 한 유튜버는 자신의 회사 책상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저 일만 한다. 접속자는 수십만명이다. '왜 일하는 모습을 볼까'라는 질문은 브이로그 세계에서 어리석은 질문이다. 이처럼 자신의 일상만으로도 유튜버가 될 수 있다 보니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로 나서는 직장인이 늘어난다.

한 직장인은 "친한 친구가 유튜버 3개월만에 2000만원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라며 "나도 해볼까란 생각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일부 유튜버의 영상을 보면 별로 하는 게 없어 보인다. 너무 쉽게 돈을 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튜버가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기간산업인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몇십년 후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세계적으로 '굴뚝없는 산업'은 피할 수 없는 물결이다. 유튜브의 발전 역시 관계된 장비업, 영상학 등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관계된 산업 분야가 너무 영상 콘텐츠 제작에 쏠려있다는 지적이다.

박진호 미래직업연구소장은 "과거 초등생의 선호직업인 의사나 과학자는 노력 없이 얻을 수 없는 직업"이라며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유튜버는 누구나 꿈 꿀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영상 앞에서 시청자와 소통해야 할까. 건강한 산업국가라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필요한 법"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4호(2019년 3월19일~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