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전 중인 차로 가득 찬 전기차 충전소 현대 이피트 /사진=뉴시스 조태형 기자 |
몇 년 전만 해도 전기차 주행거리가 300㎞를 넘지 못한 탓에 전기차의 차별화 요소로 ‘한 번 충전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를 꼽았다. 배터리 밀도도 높지 않고 운행 중 에너지 효율 관리 기술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아서다. 이런 이유로 전기차 1위 업체인 테슬라도 다른 업체와 차별점으로 주행거리를 꾸준히 강조해왔다.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하면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었지만 차의 무게도 함께 늘고 무게중심이 달라지며 주행 시 불쾌함을 유발해 소비자 반응은 시큰둥했다. 과거엔 대부분 자동차회사들이 전기차만을 위한 설계 방식인 ‘모듈형 전용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만큼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을 활용해야 했고 그에 따른 한계도 분명했다.
최근엔 현대차그룹·폭스바겐·제너럴모터스(GM) 등 완성차업체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잇따라 선보이며 배터리를 차 바닥에 깔고 앞뒤에 전기 모터를 붙이는 설계 방식을 도입해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차 성격에 따라 배터리팩 용량을 늘리거나 줄이기가 쉬워져서 현재는 400㎞ 이상 주행 가능한 모델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초급속 충전 시대 열렸다
![]() |
전기차의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
특히 현대차의 초급속충전기 ‘하이차저’는 350㎾급 고출력 시설로 800V 충전시스템을 갖춘 전기차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18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초급속충전 가능 구간에서는 5분 충전만으로도 주행거리를 100㎞가량 확보할 수 있다.
어디서든 쉽게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일반적인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충전 여건이 열악한 상황이다. 게다가 충전 시간도 최소 30분에서 1시간가량 소요되는 점도 이용자들의 불편사항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초급속충전 시설은 다양한 시도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평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대비하려면 관련 인프라 개념을 바꿔야 한다”며 “충전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충전 시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제휴사를 통한 할인이나 적립 서비스 등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 글로벌의 ‘2021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의 32%는 충전 인프라 부족을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전 시간에 대한 우려도 18%나 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설치된 공용충전기는 6만개를 넘어섰다. 충전기는 2019년 급속 2183개와 완속 1만5257개, 지난해 급속 2409개와 완속 1만6987개가 설치됐다. 올 1분기에는 급속 1396개와 완속 1112개가 추가됐다.
현재까지는 부지확보가 쉬운 공공시설 위주로 설치됐지만 정부는 앞으로 고속도로 휴게소나 주유소 등 접근성이 높은 거점을 대상으로 급속충전기 약 2280개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충전시설은 기존엔 50~100㎾h급이 급속충전기로 불렸지만 현재는 350㎾h급까지 등장했다. 3~5㎾h급의 완속충전기는 벽에 부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며 완전히 충전하는 데 4~6시간 이상 소요된다. 흔히 볼 수 있는 220V 콘센트에 꽂아 쓰는 이동형도 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잘 쓰지 않는 방식이다.
저희 충전소 이용해주세요
![]() |
전기차 누적 등록대수와 비중 /그래픽=김은옥 기자 |
전기차 판매량 증가에 따른 인프라 확충 필요성이 늘어나는 것은 전 세계적 흐름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16% 감소했지만 전기차는 41% 증가한 300만대 수준에 달했다. 올 1분기는 11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40% 늘어난 수치를 기록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2019년 신차 판매대수 179만5761대 중 전기차는 3만5075대로 전체에서 1.9%에 그쳤지만 지난해는 190만7238대 중 4만6719대로 2.4%까지 비중이 확대됐다.
이처럼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자동차 업체들은 독자적인 브랜드를 내걸고 충전소를 세우는가 하면 제휴 서비스를 통한 고객 유치에 나섰다. 앞으로 본격화될 전기차 충전 인프라 경쟁을 대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12곳에서 전기차 초고속 충전소 ‘E-pit’(이-피트) 운영을 시작했다. 충전 편의성을 높여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마련한 시설이다. 이-피트는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서울·부산 방향) 등 12곳(72기)에서 연중 24시간 운영한다. 테슬라를 제외한 DC콤보 방식의 모든 브랜드 차종이 이용할 수 있다.
테슬라는 250㎾h급 전용충전기인 슈퍼차저 V3를 국내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 등은 전국 딜러망을 활용한 충전인프라 구축에도 나섰다. 외부시설에 별도로 충전소를 세우는 것보다 전시장과 서비스센터 등을 활용해 인프라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주행거리보다는 충전을 얼마나 편하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됐다”며 “가격을 낮추면서 안전도와 편의성을 얼마나 높이는지가 앞으로 전기차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