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은옥 기자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 '168조 공적자금' 외환위기 잊었나… 高금리 이자놀이에 취한 은행들
② 윤 대통령, '은행 때리기' 배당성향 제자리걸음… 주주환원 딜레마
③ 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급브레이크…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 급물살


#. 연봉 5000만원대 외벌이 직장인 최윤석(가명)씨는 2020년 11월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2억2000만원의 전세자금대출을 받았다. 당시 금리는 2.45%였다. 최씨는 2년 뒤인 2022년 11월 집주인과 전세 갱신계약을 맺으면서 은행에 전세대출 만기 연장을 신청했다. 최씨에게 새로 책정된 전세대출 금리는 6.98%. 약 2.8배 치솟은 금리에 최씨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월 이자가 45만원에서 128만원으로 2년만에 83만원 늘어 월급의 약 40%가 은행 이자로 고스란히 나간다"며 "전세대출은 낮은 금리로 대환도 어려워 아이 양육비에 관리비, 경조사비, 식비까지 더하면 월급이 턱없이 부족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15개월 동안 0.50%로 유지됐던 기준금리가 올 1월 3.50%로 17개월만에 3%포인트 오르면서 서민들의 빚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금리 상승기 속 금융지주사들은 예금금리보다 대출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이자수익을 역대급으로 늘렸다. 이로써 지난해 사상최대 순이익을 낸 은행들은 임직원들에게 두둑한 성과급과 퇴직금을 챙겨줬다.

크게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느라 서민들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은행은 자신들의 몫만 챙기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은행 돈잔치로 국민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며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168조 공적자금' 외환위기 잊었나… 高금리 이자놀이에 취한 은행들

올해 이자수익 100조 찍나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이자수익은 총 86조3097억원으로 전년(61조8662억원)대비 39.5% 급증했다.
이자수익에서 이자비용을 뺀 이자이익의 경우 5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49조2298억원을 거둬들였다. 이는 전년(41조5609억원)과 비교해 18.5% 늘어난 수준이다.


5대 금융지주가 이자장사를 확대할 수 있었던 데는 한국은행이 지난해 초 1.00%였던 기준금리를 그 해 말 3.25%까지 7차례에 걸쳐 금리를 1년만에 2.25%포인트 끌어올린 영향이다.

통상 금리 상승기에는 예금 금리보다 대출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은행 순이자마진이 개선된다. 대출금리는 시장금리 변동에 민감하게 움직여 즉각 반영되지만 예금금리는 한은의 기준금리를 바탕으로 각종 비용을 따져 은행 재량으로 천천히 올리기 때문이다.
'168조 공적자금' 외환위기 잊었나… 高금리 이자놀이에 취한 은행들

실제로 은행 핵심 수익성 지표로 꼽히는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5대 금융지주에서 0.10~0.25%포인트 상승했다.

하나금융이 2021년 말 1.71%에서 지난해 말 1.96%로 오르며 0.25%포인트로 NIM 상승폭이 가장 컸다. 이어 우리금융 0.22%포인트, 신한금융은 0.15%포인트, KB금융은 0.13%포인트, NH농협금융은 0.10%포인트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국내 전체 은행들의 평균 예대금리차는 지난해 12월말 2.55%포인트로 2014년 6월 말(2.49%포인트) 이후 8년6개월만에 최대폭으로 벌어졌다.

올해도 고금리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5대 금융지주의 이자수익은 100조원에 육박,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들의 올해 순이익은 사상 처음으로 19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은 18조815억원으로 전년 대비 7.4% 늘었다.
'168조 공적자금' 외환위기 잊었나… 高금리 이자놀이에 취한 은행들

돈잔치한 은행… 공공재 역할론 부각

시중은행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반으로 올해 초 기본급의 최대 400%에 이르는 성과급을 지급하고 희망퇴직을 통해 1인당 6억~7억원의 퇴직금도 나눠줬다.

특히 지난해 5대 은행의 평균 연봉은 모두 1억원을 넘긴 데다 직원 상위 10%의 평균 연봉은 1억8527만~1억9784만원으로 2억원에 근접해 '돈잔치' 논란을 키우고 있다. "고금리로 가계와 기업이 어려운데 은행이 이자장사로 돈 잔치를 벌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라며 은행에 서민 상생금융 혜택을 제공하라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물론 은행은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이다.

하지만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총 168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아 기사회생한 점과 과점 체제가 보장되는 특권적 지위, 규제를 받는 라이센스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이익을 성과급·퇴직금 잔치, 고액 연봉 챙겨주기로 쓰기 전에 어려운 실물경제에 자금을 지원하고 사회공헌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발언을 둘러싸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은행은 공기업이 아닌 주주가 있는 민간기업인만큼 자율성을 흔드는 것은 지나친 관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은행 산업 전체를 공공재로만 보고 사회적 책임을 강요해선 안된다"며 "금리 인상기에 은행들의 수익 확대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 인위적으로 대출금리를 낮추고 예금금리를 높이라는 등 시장 자율성을 제한하는 요구를 하는 것은 은행 체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은 공공이 주는 권한을 갖고 영업을 해서 돈을 버는 기관이니 공적인 성격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강압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면 시장 왜곡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은행은 공공재가 맞다'며 이자 확대에 따른 사회 환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은행들이 경영을 잘해서가 아니라 과점 체제 속 일정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로 공공성을 띠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은 순이익의 30%를 주주환원과 사회공헌에 각각 쓰고 미래를 위한 투자용으로 40%를 남기는데 은행들은 사회공헌이라 해봤자 순익의 30%가량을 쓴 적이 없어 사회공헌액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