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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심장, 폐, 대동맥, 기도, 식도, 흉선, 흉벽 외상, 말초 혈관 등의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진료과입니다. 흉부외과가 다루는 장기는 하나하나가 생명과 직결돼 있습니다. 그만큼 높은 정밀도와 숙련도를 요구하는 고난도 수술을 시행하기 때문에 '외과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1년 동안 300명의 멈춰가는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의사가 있다. 초록색 수술복에 흰 가운을 입은 유재석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를 만났다.
심장은 사람 몸에서 엔진 역할을 한다. 뇌를 비롯해 팔다리 등 전신에 혈액을 공급해 주고 제 역할을 수행하게 만드는 체내 가장 중요한 장기다. 심장이 멈추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 의사는 사람의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 서 있다.
배관공으로 불리는 의사
유 교수는 지인들로부터 배관공으로 불린다. 그의 특별한 술기 덕분이다. 그는 국내 최초로 3차원 내시경 심장 수술을 도입했다. 내시경을 통한 수술 외과적 수술 방법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하지만 심장 수술은 달랐다. 수술 부위가 평면으로 보이는 탓에 내시경만으론 거리 조절이 힘들었다. 거울을 보면서 새치를 뽑을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수술 의사의 손끝에 미세하게 전달되는 감각에 의존해 대동맥이나 판막, 관상동맥을 수술할 때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혈관을 꿰는 수술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3차원 내시경을 활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술 의사가 3D 안경을 끼면 수술 부위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거리 조절도 가능하다. 가령 손상된 판막을 성형하거나 교체하는 수술도 3차원 내시경을 활용할 경우 최소 절개만으로도 가능하다. 수술 후 흉터가 남는 환자에게 미용 측면뿐 아니라 가슴뼈를 열지 않아 회복도 빠르다.
유 교수는 "환자의 몸 상태는 의사도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눈에 보이는 구조적인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게 흉부외과 수술 의사들의 일"이라며 "환자의 회복이 빠른 것은 이 수술의 큰 장점이다. 수술 후 3주 만에 골프를 치러 가신 환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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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매력은요
유 교수는 학창 시절 자신에 대해 평범한 학생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가 달라진 것은 서울의대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다. 96학번이라고 소개한 그는 PC통신 시대에 살았다고 했다."삐삐를 아시나요. 저는 삐삐 세대입니다. 대학 입학 후 PC통신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의 첫 대화였죠. 단순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접했지만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날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일기장과 같았어요. 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자극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뭘 할 수 있는지 취향을 확고하게 할 수 있었던 계기였어요. 그래서 전공으로 흉부외과를 선택했죠."
유 교수가 말하는 흉부외과의 매력은 의사로서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는 "인턴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버틸만 했지만 주치의가 되니 환자를 맡게 되면서 정신적인 고통이 커졌다. 환자의 목숨이 내 선택에 달렸기 때문이다"며 "도망치고 싶었지만 환자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리를 지켰다"고 소회했다.
수술 날을 앞두고 환자가 사망한 사건은 그의 책임감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 유 교수는 "심장 안에 종양이 생긴 지인의 수술을 맡은 적이 있다"며 "응급 수술 일정을 잡고 다음날 수술대에 올라선 순간, 환자의 종양이 떨어져 나가 혈관을 막아버렸고 그것이 지인과의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 더 빨리 수술을 했다면, 혹시 모를 경우의 수를 더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 끝을 흐렸다.
유 교수는 어떤 환자든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수술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내손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상상조차하기 힘든 무거운 책임감이 동반한다"며 "하지만 잘 해냈을 때 돌아오는 기쁨의 마음은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