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1월24일. '록의 전설'로 불리는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려 사망했다. 사진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1991년 11월24일. '록의 전설'로 불리는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려 사망했다. 사진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1991년 11월24일 '록의 전설'로 불리는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진단을 받아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중 이날 영국 런던 켄싱턴 자택에서 45세 나이에 숨을 거뒀다. 그는 사망 하루 직전 에이즈(HIV) 양성 반응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머큐리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 2주 동안 언론에서 엄청난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저는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고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이 정보를 지금까지 비공개로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의 친구들과 팬들이 진실을 알아야 할 때가 왔고 모든 사람이 저와 의사,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이 끔찍한 질병과의 싸움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저의 사생활은 항상 저에게 매우 특별했고 저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계속될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큐리는 에이즈 진단을 받은 후 4년 동안 건강이 악화돼 공연을 중단해야 했다. 1991년 6월 이후 머큐리는 켄싱턴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사망할 때까지 머물렀다. 머큐리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녹음을 계속했고 사후 퀸의 마지막 앨범인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에 참여했다.


머큐리는 1946년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 런던으로 이주해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그는 졸업 후 런던에서 로저 테일러(드럼)와 브라이언 메이(기타), 존 디콘(베이스)을 만나 밴드 퀸을 결성하고 1973년 데뷔했다.

퀸의 인기는 대단했다. 1975년 발표한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 음악 차트에서 무려 9주간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1976년 발표한 '섬바디 투 러브'도 영국 차트 2위·미국 차트 13위에 올랐다. 1977년 공개돼 영국 차트 2위·미국 차트 4위를 기록한 '위 아 더 챔피언스'는 이후 30여년간 온갖 스포츠 경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고전 음악이 됐다.

이처럼 퀸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을 풍미하며 세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명곡들을 남겼다. 퀸은 하나의 고정된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를 록에 접목하며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 록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는 4옥타브를 넘나드는 힘 있는 보컬과 화려한 맨십으로 많은 팬을 거느렸다.

머큐리가 사망한 뒤 1992년 퀸 멤버들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에이즈 인식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약 7만2000명의 관객이 콘서트를 보러 왔으며 엘튼 존과 데이비드 보위, 조지 마이클,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 더 후의 로저 달트리, 애니 레녹스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이 그를 기리며 함께 출연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국내에서 흥행을 거두면서 재조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