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아흔 살 할머니 이금자 씨(가명)는 올해 초 다리와 허리를 다쳐 석 달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때 만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금자 씨는 "우울? 그런 거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기자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뉴스1은 지난 두 달간 농촌에 거주하는 자살 위험군 18명과 자살 유족 7명, 주민 및 복지센터 관계자 20여 명 등 50명가량을 만나 자살 실태를 심층 취재했다. 전국 정신건강 병·의원 1190곳 분포를 직접 분석한 결과 의사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은 농촌의 현실도 확인했다. 생명존중 탐사 기획 '외딴 죽음'을 통해 금자 씨처럼 적막감에 둘러싸인 '농촌 사람들'의 자살 예방 방안을 모색해 봤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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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2023년 10월 19일)에 아들에게 전화했어요. 유독 날씨가 추웠는데, 차에서 숙박하면 추우니 금방 들어오라 했어요. 아들에게 '너 내일 오는 거지?'라고 물었더니, 아들이 '네'라고 하더군요"
(서울=뉴스1) 김민수 남해인 홍유진 기자 = 2023년 10월 20일은 유광수 씨(가명·사망 당시 40대)의 1주기였다. 어머니 안영자 씨(가명·68)는 "이젠 (슬픔이) 극복됐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러나 아들과의 마지막 전화를 떠올릴 때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광수 씨는 10년 넘게 근무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후 대관령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고 후 부모님이 있는 강원도의 한 농촌으로 거처를 옮긴 뒤 불과 열흘 만에 세상을 등진 것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여섯 글자에 담긴 고통·고뇌…"왜 상담받아야 하나" 거부 반응

영자 씨는 아들의 사망 4개월 후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지역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상담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다. "너무 힘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너무 힘들었다'는 여섯 글자에는 최근 1년간 자살 사망자 유족으로 살고 있는 안 씨의 심적 고뇌와 고통이 꾹꾹 담겨 있었다.


남편인 유재범 씨(가명·70대)는 최근에서야 상담받기 시작했다. 안 씨는 "남편에겐 애도 기간(애도 반응)이 조금 늦게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볼비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의 반응을 '애도 반응'이라고 정의했다. 애도 반응은 △충격 무감각 △갈망과 찾기 △혼란과 절망 △재조직화 순으로 나타난다.

영자 씨는 "남편이 (아들이 사망한 직후) 정신이 없었고, 남자라는 이유로 내색하지 않았다"며 "처음에는 왜 상담받아야 하냐는 거부 반응까지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재범 씨도 자신의 심각한 감정 기복을 인지하고 상담 지원을 받게 됐다.

두 사람은 지역복지센터에서 진행하는 상담으로 내면의 응어리를 치유하고 있다. 최근엔 마당극도 하고 있다. 연극을 통해 타인의 인생을 재연하는 것이 흥미롭고 상실감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뉴스1이 지난해 10월 14일부터 11월 12일까지 자살 유족 48명을 직접 설문한 결과.ⓒ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뉴스1이 지난해 10월 14일부터 11월 12일까지 자살 유족 48명을 직접 설문한 결과.ⓒ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자살 유족 10명 중 6명 이상 '우울'… 농촌 등 비수도권일수록 '마음의 병' 드러내기 꺼려

그러나 부부는 의료기관의 도움까지 받지 않는다. 영자 씨는 "지역복지센터에서 전문적인 상담을 권유하며 정신건강의학 병원을 안내하긴 했다"면서도 "정신건강과만 하더라도 이 동네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기 때문에(부정적이기 때문에) 찾는 분위기가 아니다. 증상이 아주 심하지 않으면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살 사망자 유족들은 슬픔을 사적인 영역으로 생각하고 외부 활동이나 종교 등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영자 씨 사례처럼 복지센터 상담이나 외부 활동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슬픔과 심적 고통이 최고조에 달한다면 의료 기관의 도움 없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문제는 고립감에 빠지기 쉬운 농촌을 포함한 비수도권 지역의 자살 유족일수록 정서적 아픔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강원도 춘천시에 사는 임은희 씨(가명·40대·여)는 2023년 2월 2일 친오빠를 떠나보낸 후 집안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는 "가슴이 답답하고 말하고 싶어도 친구나 남편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은희 씨는 뒤늦게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았다. 검사 결과 임 씨의 우울감과 불안감은 위험 수준이었다. 그는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사고가 났을 것"이라며 "(자살을) 개인의 죽음으로 여긴다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살 사망자 유족의 자살률은 일반인구 집단을 웃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 연구팀이 지난 2022년 국제학술지 정신의학 프런티어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8년 1월~2017년 12월 국내 자살 유족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586명이다. 이는 일반 인구 자살률 26명의 약 22.5배다.

뉴스1이 지난해 10월 4일부터 11월 12일까지 자살 유족 48명을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3명 정도(27.1%·13명)가 '최근 우울감을 느끼십니까'라는 질문에 "매우 우울하다"고 했을 정도다. "조금 우울하다"고 응답한 사람도 16명(33.3%)이나 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울감을 느낀 유족이 60% 이상(60.4%)인 셈이다.

'최근 자살을 생각하신 적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엔 15명(31.3%)이 "3개월 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48명 중 14명(29.2%)은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유족 김선화 씨(가명·38·여)는 "(자살로) 사람 한 명이 죽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숨질 수 있다"며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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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4개 시군구 정신건강 전문의 '0명'…"큰 병원이면 몇 달 기다려야"

농촌을 포함한 비수도권에도 자살 유족을 대상으로 한 복지센터의 상담 또는 자조 모임(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지만 수도권과 비교하면 그 수가 부족한 데다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화 씨의 아버지는 지난 2019년 아내와 사별한 후 춘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화 씨는 복지센터의 자조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지만 이 모임이 계속될지 장담하지 못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방의 경우 자조 모임이) 있었다 없었다 할 수밖에 없어요. 저처럼 계속 자조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도 인구가 적은 지방의 특수성 탓에 모임 자체를 꾸리기 어렵습니다."

농촌은 물론 비수도권 지역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3067명에서 4232명으로 1165명 증가했지만, 그중 67.3%(784명)가 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별로는 서울에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2014년 682명에서 2024년 121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으나 강원도는 98명에서 87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강원 고성·경북 영덕·충남 계룡 등 전국 24개 시군구 내 정신건강 전문의 수는 '0명'이다. 이 지역에 거주 중인 77만 1370명은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셈이다.

인프라를 갖춘 정신건강 의료기관이 지역에 있다고 해도 진료를 받기는 쉽지 않다. 강원도 원주시에 사는 자살 유족 남 모 씨(35·여)는 "규모가 큰 병원의 경우는 정신과 진료를 받기 위해선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며 "소규모 병원은 (유족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상담이 아닌 짧은 진료와 약 처방 위주"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