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수익률과 수수료에서 모두 앞선 계좌로 퇴직연금 머니무브를 주도하고 있다. /사진=챗GPT
증권사가 수익률과 수수료에서 모두 앞선 계좌로 퇴직연금 머니무브를 주도하고 있다. /사진=챗GPT

최근 증권사들이 주력하는 건 퇴직연금 실물이전이다. 높은 수익률과 낮은 수수료 등의 특징이 투자자들의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현재는 실물이전 시행으로 기존 보유 상품 매도 없이 퇴직연금 계좌를 증권사로 옮길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익률이 높은 원리금 비보장 상품에서 연 수익률 10%를 넘은 증권사는 14곳 중 8곳이다. 은행·보험사 중에서는 28곳 중 5곳에 불과했다.


6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시행한 실물이전으로 증권사가 은행·보험업계로부터 가져온 금액(순유입금)은 1월까지 4051억원에 달한다. 개인이 직접 금융사·금융상품을 고르는 IRP에서 3753억원이 들어왔다. 사용자인 회사가 금융사를 택하고 근로자가 상품을 고르는 DC형에서는 2115억원 유입됐다. 근로자 선택권이 없는 DB형에서는 1817억원이 빠졌다.
은행·보험보다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가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은행·보험보다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가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은행 IRP 계좌만 이용해온 기자도 지난해 연간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미래에셋증권을 통해 실물이전을 직접 시도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말 IRP 원리금 비보장 상품 적립금이 6조7842억원으로 업계 1위다. 실물이전 제도 시행 전인 3분기 5조9965억원에서 13.1% 성장했다.

미래에셋증권에서 안내하는 실물이전 절차는 ▲계좌개설 ▲이전신청 ▲기존 금융사로부터 이전의사 확인 등 3단계다. 계좌개설은 영업점이나 모바일 웹·애플리케이션(앱)에서만 가능하고 PC에서는 불가능하다.

계좌개설 이후 이전신청을 위해 로그인하려면 ▲보안카드 ▲공동인증서 ▲OTP 중 한 가지가 필요하다. 보안카드 발급은 영업점을 통해야 한다. 공동인증서는 증권사 발급 인증서나 연간 4400원을 내고 발급해야 하는 범용 인증서가 필요하다. 기존 은행에서 사용하는 무료 인증서는 쓸 수 없다. 기자는 결국 기존 OTP를 폐기하고 모바일 OTP를 새로 발급해야 했다.
미래에셋증권 ID 가입을 위해 지점 내방을 안내하는 화면. /사진=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증권 ID 가입을 위해 지점 내방을 안내하는 화면. /사진=미래에셋증권

계좌개설과 로그인을 마치면 비로소 이전 신청할 수 있는데 신청 시 현재 보유한 상품이 실물이전 가능 상품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불가능 상품이면 안내 없이 자동 매도돼 현금으로 입금한다. 실물이전 가능 상품만 따로 이전할 수는 없어 불가능 상품이 있으면 자동 매도한다. 이렇게 금융회사 간 이전 과정에서 매도된 금액은 전체 이전 적립금 24.7%(약 6000억원)에 달한다.


신청 전 이전 가능 여부를 확인하려면 증권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상품을 찾거나 상담원 도움을 받아야 한다. 평일 오후 상담 대기시간은 30분이 넘었다.

신청 과정에는 IRP 계좌 가입일을 기존 계좌와 신규 계좌 중 고르는 절차가 있다. IRP 연금을 수령하려면 만 55세·가입기간 5년 이상 조건을 채워야 한다. 잔액이 있는 계좌로 실물 이전할 때도 이체받는 계좌 가입일이 적용되기 때문에 어떤 계좌 가입일이 유리한지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하면서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기는 건 '수수료' 차이 때문이다. 기자에게 IRP 이전 의사 확인 전화를 건 은행 직원은 "1년간 유지한 계좌에는 자산관리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면서 "대출도 은행에서 받았는데 한곳에서 관리하는 게 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증권사에서는 비대면 개설한 계좌에 대해 자산관리뿐 아니라 운용 수수료도 받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은행 직원은 "증권사는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데 수수료를 받지 않을 리가 없다. 뭔가 있을 수 있느니 더 확인해보셔야 한다"며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퇴직연금 계좌로 금융사가 얻는 수수료는 자산관리와 운용 수수료로 나뉜다. 원리금 보장 상품 비율이 비교적 높은 은행·보험에서는 자산관리 수수료 비중이 크다. 반대로 증권사에서는 운용 수수료를 많이 얻는다.

2021년 삼성증권이 비대면 직가입 계좌에 자산관리·운용 수수료를 면제하기 시작한 이후 미래에셋증권이 2022년 합류하면서 증권가에서는 비대면 수수료 면제가 익숙하다. 그동안 퇴직연금 적립금 대부분을 차지하며 수수료 이익을 거뒀던 은행·보험업권이 증권사 침공에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퇴직연금 머니무브는 앞으로도 가속할 전망이다. 정부는 실물이전 가능 상품을 신청 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DC형에서 IRP로의 이전을 허용하는 등 제도 확대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퇴직연금이 지나치게 은행 원리금 보장 상품에만 몰려 국민 노후대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실물이전 절차는 복잡했지만, 감수할만한 이점이 뚜렷했다. 다만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도 많아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