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통 노포 외에 완성도 높은 맛을 자랑하는 신흥 평양냉면 전문점들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서령의 순면. /사진=다이어리알

매년 여름철이 되면 가격 논쟁의 중심에 서는 대표적인 외식 메뉴인 '평양냉면'. 서울의 유명 평양냉면 전문점 기준 한그릇 가격은 이제 2만원에 육박하지만 그럼에도 애호가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육향과 은은한 감칠맛은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바로 그 절제된 풍미가 미식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울에서는 대표적으로 우래옥, 평양면옥, 필동면옥 등 오랜 전통을 지닌 냉면집들이 계보를 이루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정통 노포 외에도 신흥 평양냉면 전문점들이 탄탄한 맛과 높은 완성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해석으로 평양냉면의 미학을 새롭게 풀어내며 평양냉면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서령

서령의 수육(왼쪽)과 짜배기. /사진=다이어리알

서울 남대문 인근 분주한 도심 속에서 정제된 고요함을 품고 있는 평양냉면 전문점 '서령'은 대표적인 평양냉면 신흥 강자 중 한곳이다. '음식의 본질'을 지키려는 한 부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최근 오픈 1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 서울 빕구르망에 선정됐다.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 '먹을텐데' 등 여러 매체에 소개되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그 시작은 훨씬 오래전 강원도 홍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정종문 대면장과 이경희 대표는 2000년대 초 홍천에서 유명한 '장원 막국수'를 창업했던 인물들이다. 이곳은 순메밀 막국수의 성지로 불리는 매장으로 전국에 제자와 분점을 둔 원조격 매장이었다. 2019년 강화도로 이전해 서령을 열었으며 하루 한정 수량 판매하는 순면을 먹기 위해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다녀갔다. 그러다 2024년 5월 서울 숭례문 앞 단암빌딩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날 서령의 맛은 이 과정 속에서 다듬어지며 완성됐다. 현대적인 외관, 넓고 세련된 공간,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을 갖췄지만 식자재 손질부터 육수 조리, 면 반죽과 삶는 방식까지 모든 과정은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

대표 메뉴는 냉면이 아닌 '순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가 제분한 메밀가루로 가게만의 반죽 노하우를 담아 뽑아내는 메밀 100% 면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를 자랑한다. 강화도산 한우 암소의 양지와 사태, 채소를 넣어 정성껏 끓여내는 육수는 잡내 없이 깔끔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 초보자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 '은은한 육향'이 매력이다.


고명으로 오르는 사태 편육은 육수에 함께 담겨 있어 부드럽고 풍미가 있다. 삶은 달걀 반개, 달걀지단, 오이채 등의 고명은 최소한의 장식이지만 면과 육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화를 이룬다. 기본 반찬으로 제공되는 고춧가루 무채와 초절임 무채는 면의 담백함을 보완하는 요소다.

구수한 풍미의 면에 강점이 있는 만큼 좋은 국산 재료들을 숙성시킨 비빔장과 함께 내어주는 '비빔 순면', 그리고 갓 짜낸 들기름과 김고명을 올려 비벼 먹는 '들기름 순면' 등 다양한 취향을 만족하는 선택지가 준비됐다.

'항정수육'은 순면과 함께 이곳의 명물로 통하는 메뉴다. 수육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기 위해 일반적인 수육 부위가 아닌 항정살을 매일 아침 정성을 다해 삶아낸다. 맥주잔에 얼음을 잔뜩 채우고 소주를 가득 따라 천천히 녹이며 마시는 '짜배기' 한잔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서령'이라는 이름에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다. 그저 냉면 맛집이 아니라, 냉면을 만드는 사람들의 철학과 태도, 그리고 이를 지켜내려는 의지까지 포함된 공간이다. 매장 내에 전시된 세월을 머금은 요리 도구들처럼 효율과 유행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요즘의 외식업계에서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유행이 아닌 원칙과 본질이 지닌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향동가 논현본관

한우 암소 1++로 육수를 내는 향동가 냉면. /사진=다이어리알

한우 암소 1++육수의 육향과 맷돌제분으로 순메밀의 거칠고 곡향이 풍부한 면으로 선보이는 평양냉면 전문점. 분당에서 유명한 평양냉면 전문점인 '율평'에서 오픈한 곳으로 건물 앞에 별도로 제분, 제면 공간을 통유리를 통해 오픈해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곁들이로 메밀의 향과 색감이 살아있는 메밀만두, 한우 1++수육을 선보이며 하절기에는 국산 서리태콩으로 만든 담백하고 고소한 100% 순메밀 콩국수를 선보인다.

김인복의광평 삼성본점

김인복 셰프가 선보이는 김인복의광평 냉면. /사진=다이어리알

서관면옥, 한우다이닝 울릉을 탄생시킨 김인복 셰프가 선보이는 공간. 제주 한라산 아래 첫 마을 광평리에서 키운 메밀로 매일 아침 매장에서 직접 제면해 100% 순메밀면을 뽑는다. 평양냉면 육수는 한우로 우려 깊은 맛을 내며 그 외에도 비빔냉면과 조선시대 궁중에서 즐겼던 비빔국수를 재해석한 골동면도 특색 있다. 냉면과 궁합이 좋은 돔베고기, 제주 난축맛돈 구이 등도 이곳의 명물.

옥돌현옥

자가제분, 자가제면으로 씹을수록 구수한 맛을 내는 옥돌현옥의 냉면. /사진=다이어리알

자가제분, 자가제면, 직접 끓인 한우육수로 내어주는 순메밀 100% 평양냉면 전문점. 대표 메뉴인 평양 물냉면은 진한 육향과 어우러지는 슴슴한 맛과 씹을수록 구수한 면의 조화가 훌륭하다. 곁들이도 다양하다. 동해안에서 당일 직송한 가자미로 직접 담근 가자미식해는 슴슴한 냉면, 담백한 돼지곰탕과 어우러져 입맛을 돋워주며 매일 매장에서 직접 빚는 손만두, 담백한 수육 등 재료의 퀄리티와 정성에 집중한 요리들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