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배터리 생산 보조금 유지 방침을 정했지만, 국내 배터리 업계를 둘러싼 과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는 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미국이 사실상 배터리 생산 보조금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 역시 안도하고 있다. 내년 말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폐지되고 중국 배터리 업체 공세가 거세지는 등 안심하기엔 시장 환경이 녹록지 않다. 북미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중심으로 한 활로 확장,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책 마련 등 돌파구 확보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이 추진하는 감세법안이 22일(현지시간) 하원에서 통과됐다. 해당 법안에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상의 각종 세액공제를 감소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배터리 AMPC(생산세액공제) 혜택 종료 시한은 2032년에서 2031년으로 1년 단축되는 데 그쳤다. 배터리 셀과 모듈에 대한 생산 보조금 액수도 현행과 똑같이 유지됐다.


미국 정부의 이같은 결정으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한숨 돌렸다는 분석이다. AMPC는 북미 내에서 배터리 셀과 모듈을 생산할 경우 1kWh당 최대 45달러의 세액을 환급해주는 제도로, 국내 업체들은 그간 해당 제도를 통해 수익성을 방어해왔다.

상황을 낙관하기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미국은 IRA 개정의 일환으로 전기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2026년 말까지만 하기로 했다. 최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이어지는 상황 속 보조금까지 부재할 경우 전기차 수요는 흔들릴 수밖에 없고, 후방 산업인 배터리 업계 타격도 불가피하단 관측이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존재감 강화도 두렵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지난해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37.9%를 기록하면서 4년 연속 1위에 올랐고 올해 1분기에도 38.3%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홍콩증시에 상장하며 약 6조3000억원의 자금을 조달, 시장에서의 성장성도 인정받았다.


지난 1월에는 'CATL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법인을 세우며 한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국내에서 ▲배터리 및 ESS 제품 판매·설치·운송·유통 ▲배터리 재활용 ▲전기차 충전소 운영 등의 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다. 전기차와 ESS용 배터리 판매 외에도 중고 배터리 재활용 등 전방위적인 사업 확장 나서는 모습이다.

중국 배터리 업체의 가파른 성장에는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2023년 CATL에 보조금 약 1조1300억원을 직접 지원했으며, 지난해 1~3분기에도 약 1조원을 투자한 바 있다. 든든한 지원 덕에 연구개발(R&D)도 가속화됐다. CATL의 R&D 투자액은 지난해 3조6660억원을 기록하는 등 3년 연속 3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CATL은 지난 21일 ▲2세대 나트륨이온 배터리 '낙스트라' ▲5분 충전에 520㎞를 주행하는 2세대 배터리 '션싱' 등의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중국 외풍과 규제 리스크가 적은 북미 ESS 시장을 공략하는 게 중요하단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북미 ESS 시장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설 등의 영향으로 전기차 대비 꾸준한 성장세가 담보된다. 미국이 대중 견제를 강화하는 만큼 북미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반사이익도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전에도 미국은 내년부터 중국산 ESS 배터리에 대한 28.4%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한국판 IRA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도입도 필요하다. 해당 법안은 투자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이를 현금으로 환급하거나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게 골자다. 현행법은 투자 세액공제 방식으로 법인세만 감면되기 때문에 이익이 없는 적자 기업은 공제를 받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 21대 대선 후보들이 배터리 산업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정부의 실질적 지원책이 뒤따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내 배터리업체가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새로운 돌파구를 개척하기 위해선 미국 시장으로의 적극적인 진출이 필요하다"며 "미국 배터리 공급망이 한국 중심으로 운영되는 게 당국의 보안·제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득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도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배터리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