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팬데믹 이후 새롭게 부상한 장르다. 표현의 제약이 없어 실사와는 다른 감성을 표현할 수 있고, 탄탄한 팬층이 있어 일정 수준 이상의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 그 가운데 북미에서 '기생충'의 최종 스코어를 뛰어넘은 '킹 오브 킹스'나 국내에서 120만 명 이상의 최종 관객을 동원한 '사랑의 하츄핑', 50만 명을 동원하며 인기를 끈 '퇴마록' 등은 진일보한 동시대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증명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선보이는 첫 번째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감독 한지원)은 이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상승세' 흐름을 탄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별에 필요한'의 배경은 2050년 서울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삼은 만큼, 현대의 한국과 미래에 대한 상상이 뒤섞인 애니메이션 속 서울의 모습은 레트로 하면서도 사이버 펑크적이다. 한지원 감독은 패션 트렌드가 약 20년 주기로 돌아오는 것을 감안해 영화 속 사람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현재 트렌드인 'Y2K 스타일'에 맞춰 표현했다고 밝혔다.

율주행 자동차가 다니고 홀로그램이 가득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도 옆에서 이야기하듯 대화가 가능한 기계화된 세상에서 LP를 듣고 'Y2K' 스타일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세운상가를 오가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새롭다.
여자 주인공 난영은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슬픔을 안고 산다. 난영의 엄마는 25년 전 우주과학자로 화성 탐사를 갔다가 그곳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뒤를 이어 역시나 우주과학자가 된 난영은 4차 화성탐사 프로젝트 최종 선발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고, 서울에 돌아온다. 서울에서 그는 엄마의 유품인 턴테이블을 고치기 위해 수리점을 찾다가 제이를 만나게 된다.
제이는 턴테이블을 핑계로 난영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난영은 자신이 우연히 찾아 즐겨듣던 노래가 제이가 만들고 부른 노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제이는 오랫동안 밴드를 했지만, 멤버들과 음악적인 견해가 달라 그만두게 됐던 아픔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 난영은 서울에서도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제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인 난영을 보고 자극을 받아 다시 음악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난영은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해 화상 탐사 우주인으로 선발된다. 두 사람은 이별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별에 필요한'은 말랑하고 촉촉한 멜로다. 파스텔톤의 예쁜 작화로 보고, 연기 잘하는 두 배우, 김태리와 홍경의 목소리로 듣는 젊은 남녀의 순수한 멜로는 마음을 끈다. 처음에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인 듯 다소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후반부 상처를 극복하고 두 사람의 진심이 통하는 장면들은 사뭇 감동적이다. 김태리와 홍경이 처음 도전한 목소리 연기에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입고 나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초보자의 위화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작품이 더욱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흐르는 매력적인 음악 덕분이다. 김태리와 홍경이 함께 부른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부터 밴드 wave to earth의 김다니엘, 가수 존박 등이 참여한 OST는 다시 찾아 듣고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요즘 작품들 중 보기 힘든 서정적인 멜로 한 편을 볼 수 있는 점에서 '이 별에 필요한'은 가치가 있다. 러닝타임은 96분. 3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