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소셜믹스 정책 변경으로 논란이 일면서 오세훈 시장은 제도 유연화를 시사했다. 사진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3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에 대해 브리핑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강뷰 아파트'로 수억원의 프리미엄을 보유한 서울 강남·여의도·잠실 등 재건축 단지 내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임의 배치하는 방안을 놓고 재산권 침해 논란이 제기됨에 따라 서울시는 급히 정책 변경 검토에 나섰다. 오세훈 시장은 제도 유연화를 시사한 가운데 소셜믹스 원칙을 후퇴시키는 결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주택실은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에 적용하는 소셜믹스 정책의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 시장이 지난 27일 간부회의에서 유연한 제도 운영을 지시하면서 대안 마련에 나선 것이다. 오 시장은 '소셜믹스의 본질적 철학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보라'는 취지의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뷰 임대 배치에 조합 반발… "고층 프리미엄 수억원 가치"

서울시는 그동안 임대와 분양 가구를 구분하지 않고 동·호수를 무작위 추첨 배치하는 방식의 소셜믹스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정비사업 조합이 인·허가 혜택과 행정 지원을 받은 대가로 기부채납하는 공공임대주택은 입지가 나쁜 동과 저층·북향 등으로 설계되는 경향이 있어 계층간 분리를 조장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사업주체인 조합 입장에선 설계권과 재산권의 침해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사업성이 악화되면 경제활동 주체 일방이 손실을 감수하는 부분도 당국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최근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와 여의도 공작아파트 등에선 이 같은 이유로 임대주택 배치와 관련해 시와 갈등을 빚는 사례가 속출했다. 한강에 인접한 동이나 로열층을 임대주택이 차지하는 경우가 발생해 역차별 논란마저 제기됐다.

부동산 거래에서 층과 조망 여부는 수억원의 금전 가치와 환산할 수 있다. 동일 면적이라도 수억원대의 시세 차이가 발생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래미안 대치 팰리스'(1608가구·2015년 입주) 전용 84㎡는 2016년 15억5000만원(5층)에 거래됐고 지난해에 34억원(4층)을 찍었다.


비슷한 기간 고층 매물은 저층보다 5억원 이상이 더 올랐다. 2016년 동일 면적 중에 15억4500만원(31층) 거래가 있었고 지난해 39억3000만원(30층)에 손바뀜됐다.

최근 분양·임대 분리 추첨으로 논란이 된 대치동 구마을3지구(단지명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는 소셜믹스 규정을 위반해 20억원의 벌금성 기부채납을 추가로 내기로 했다. 서울시는 분양이 완료돼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나, 사실상 소셜믹스 원칙을 폐기한 것으로 해석돼 다른 재건축 단지들도 현금 기부채납 등 대체 공공기여를 허용해 달라는 요구가 잇따랐다.
서울시가 임대·분양을 통합 배치하는 소셜믹스 정책 유연화를 검토 중인 가운데 원칙을 후퇴하는 결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초·강남 아파트 일대. /사진=뉴스1

강남 재건축에 무너진 기준… "돈으로 풀 문제 아냐"

서울시는 소셜믹스 정책이 도입된 2021년 이전에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은 단지에 대해 기준을 다시 정립하고 현금 기부채납의 제도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는 정책 방향에 유연성을 두되 전면 폐기는 안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금 기부채납의 방식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검토 중인 단계"라며 "잠실주공5단지와 여의도 공작 등 논란이 된 단지에 대해 세부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임대·분양의 통합 배치라는 정책의 취지가 과거에 '단지 내 임대 주민 차별'이라는 사회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대 주민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거주자로서의 권리를 침해당한다는 논란이 발생한 데 따른 정책 보완이었다.

임대·분양 가구의 분리 배치를 허용했던 2021년 이전에는 임대 주민들이 별도 출입문을 이용하거나 놀이터·헬스장 등 커뮤니티시설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설계 단계부터 조망권이 없는 저층, 소음이 심한 도로변 등에 배치하고 건물 바깥벽의 색상을 구분한 단지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학의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25년 이상 임대주택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선례가 생기면 다른 단지들도 따라서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합원 입장에서 보면 벌금을 내는 것이 경제적 이득이기 때문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영역이 아니라 원칙을 후퇴시킨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비사업 공공기여가 용적률 인센티브에 대한 일종의 대가라고 보면 정책의 근본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