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출신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오(Ng?g? wa Thiong'o) /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동아프리카 최고의 문학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케냐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가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그의 딸이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29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응구기 와 티옹오의 딸은 "오늘 아침, 아버지의 별세를 알리게 돼 마음이 무겁다"며 "그는 충만한 삶을 살았고, 훌륭하게 싸웠다"고 적었다.


응구기 와 티옹오는 1970년대부터 영어가 아닌 자신의 모국어인 기쿠유(Gikuyu)어만을 사용해 탈식민주의 아프리카 정체성의 강력한 상징이 됐던 작가다.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됐지만, 수상은 이루어지 않았다.

응구기 와 티옹오는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2016년 토지문화재단이 그를 제6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이 제국주의, 식민주의, 독립투쟁, 서양과 비서양, 근대와 전 근대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고, 세계화 과정 속의 인간의 삶의 한 측면을 문제들의 복합적 지평 속에서 널리 보게 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케냐 야당 지도자 마사 카루아는 자신의 X(구 트위터)에 "저명한 문학계의 거인이자 학자, 이 땅의 아들이자 그 발자취가 지울 수 없는 위대한 애국자 응구기 와 티옹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위로를 전한다"고 썼다.


응구기 와 티옹오는 1977년 그의 연극 '응가아히카 응데엔다'(결혼하고 싶을 때 결혼하겠다)가 상연된 직후 기소 없이 투옥됐다. 이 연극이 케냐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즉각 그를 양심수로 지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펼쳐진 구명운동 덕분에 응구기 와 티옹오는 1978년 12월 카미티 최고 보안 교도소에서 석방됐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케냐 지부는 X에 "자유로운 글쓰기를 해준 므왈리무(선생님)께 감사드린다"며 "그는 이미 케냐 역사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했고, 이제 필멸에서 불멸로 전환됐다"고 추모의 글을 게시했다.

응구기 와 티옹오는 1982년 케냐에서 극단 활동이 금지된 후 자진 망명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영국으로 갔다가 이후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1986년에는 국가 문화, 역사,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언어의 역할에 대한 에세이 모음집인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정신 식민화'(Decolonising the Mind)를 출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