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14년 5월 30일,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무정부주의 이론가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바쿠닌이 태어났다. 국가와 모든 형태의 강제적 권위를 반대하고 자유, 평등, 연대를 바탕으로 한 사회를 꿈꿨던 급진적 사상가다.
바쿠닌은 초기에 군인으로 복무했으나 1835년 탈영 후 철학 연구에 몰두했다. 1840년 베를린 유학 중 헤겔 철학에 심취하며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에 눈을 떴다. 그의 초기 사상은 헤겔의 변증법적 관점에서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1840년대 중반부터는 유럽 전역의 혁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48년 그는 프라하 슬라브 회의와 드레스덴 봉기에 가담했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1861년 시베리아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영국으로 망명한 후, 그의 사상은 더욱 확고한 무정부주의로 발전했다. 그는 국가를 억압의 도구로 보았고, 모든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며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1869년 그는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에서 카를 마르크스와 치열한 이념적 대립을 벌였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한 국가 권력 장악을 주장한 반면, 바쿠닌은 모든 국가 권력에 반대하며 즉각적인 국가 해체를 요구했다. 이들의 대립은 제1인터내셔널의 분열로 이어졌고, 바쿠닌은 마르크스주의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무정부주의 사상의 흐름을 형성했다.
바쿠닌 일생 동안 수많은 혁명 운동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투옥되고 망명하며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그의 격정적인 성격과 직접적인 행동은 추종자를 낳았지만, 동시에 내부 갈등과 외부 탄압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는 1876년 7월 1일 스위스 베른에서 세상을 떠났다. 바쿠닌의 이상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국가 권력의 본질과 개인의 자유, 사회 정의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반권위주의 운동과 직접 민주주의 논의에 중요한 의제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