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김태리, 홍경 씨가 더빙을 해주겠다고 했을 때 날아갈 것 같았어요."
넷플릭스가 처음 선보인 한국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을 연출한 한지원 감독은 두 명의 배우를 캐스팅한 것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다.
'이 별에 필요한'은 2050년 서울, 화성 탐사를 꿈꾸는 우주인 난영과 뮤지션의 꿈을 접어둔 제이가 만나 꿈과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로맨스 영화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이 작품은 2D 애니메이션인데 배우 홍경과 김태리가 목소리 연기뿐 아니라 실사 촬영에 참여해 캐릭터 구성 등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배우의 연기로 애니메이팅을 하는 것은 픽사 같은 서구권 작품, 예산이 큰 작품에서는 많이 쓰는 방식이에요. 2D 애니매이션, 재패니메이션 같은 작품에서는 많이 시도가 안 되는 편이지만요. 어떻게 보면 국내에서 많이 없는 시도라서 실사 촬영 스케줄 표를 짜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겁이 좀 났어요. 그래도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함께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라서 작업이 잘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김태리, 홍경을 캐스팅한 것은 오롯이 감독의 선택이었다. 한지원 감독은 이에 대해 "캐스팅 단계에서 난영이의 개성에 대한 표현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그런 과정에서 김태리 배우를 떠올렸고, 제이에 대해서도 홍경 배우가 생각한 이미지에 부합했다"고 전했다.
두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김태리를 캐스팅 하기 위해서 한 감독은 JTBC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속 김태리의 대사에 애니메이션을 입히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두 분이 캐스팅됐을 때 정말 날아갈 것 같았어요. 김태리 배우는 애니메이팅한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시고 되게 재밌어하시더라고요. 그게 캐스팅에 유효했던 것 같아요. 사실 홍경, 김태리 배우를 너무 좋아해서 저는 난영과 제이의 목소리뿐 아니라 영혼을 애니메이션에 담는 것도 해볼 수 있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분들이니까요."

결과는 성공적이다. '이 별에 필요한'은 넷플릭스로 공개된 뒤 호평을 받고 있다. 북미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이 영화는 93%의 신선도 지수를 유지 중이며, 공개 후 국내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한지원 감독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울어주시더라, 귀여운 눈물 '짤방'을 올려주시고, 울고 있는 '밈'이 나오기도 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번 작품은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 애니메이션계에서도 한 감독과 넷플릭스의 만남에 주목하고 있다.
"제가 첫 샘플이 된 상황이에요.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가면 애니메이션은 완구나 교육용으로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면 투자를 받기 어려웠어요.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새로움과 기획적인 완성도와 질적인 면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기존과 다른 투자 행태여서 성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 별에 필요한'은 두 성인 남녀의 성숙한 사랑과 성장을 그려낸다. 한국에서 만들어온 상업 애니메이션과는 주제도 소재도 아주 다르다.
"노을이 유독 많이 나온 작품이에요. 청춘 영화에 많이 나오는 톤의 노을이라기 보다는 둘의 관계가 성숙한 연인의 모습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더 어른스럽게, 조금 더 말랑말랑하고 더 위험하게, 매력 있게 표현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찬란한 청춘의 색깔을 표현하는 컬러 팔레트보다 농밀함을 표현하고 싶은 게 있었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한지원 감독은 졸업 후 옴니버스 장편 '생각보다 맑은'(2015)으로 '최연소 극장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실력파다. 재학 시절 만든 단편 '코피루왁'(2010)으로 서울인디애니페스트 대상인 '인디의 별'을 수상, 남다르게 푸른 떡잎을 보여줬던 그는 단편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2022)로 선댄스 영화제와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돼 작품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롤모델은 미야자키 하야오다. 애니메이터라면 누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갔던 길을 따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많은 분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작품이 둥글둥글하다고 생각하시는데 되게 특이하고 개성 있고 작가주의적인 작품들이에요.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고요. 특이한 개성을 한평생 추구하면서도 스튜디오 차리고 같이 하는 작업자들과 오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런 면에서 그 이상의 롤모델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