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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공장에 대한 미국산 장비 반입 제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동시에 미국산 장비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트럼프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을 제한한다는 방침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산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매번 미국 정부의 개별 승인을 받는 게 핵심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은 미국 정부 승인 없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들였다.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규정을 통해 미국의 규제를 피해왔기 때문이다.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에도 일부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이 금지됐는데, 한국 기업들은 VEU 규정을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미국산 장비를 반입했다.
VEU는 사전 심사를 거친 특정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수출통제를 완화해주는 정책이다. 민감 기술이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해선 수출 절차가 간소화된다.
양사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중국 생산기지에서 범용 제품을 상당량 생산하는 데다 공정 시스템 역시 미국산 장비 중심으로 구축돼 있어서다. 관련 조치가 공식화될 경우 실질적인 피해가 불가피하단 분석이다.
두 회사는 중국에서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글로벌 물량의 20~40%를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쑤저우에선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D램, 충칭에 패키징, 다롄에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을 가동 중이다.
미국의 대표 반도체 장비업체인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등의 제품도 핵심 공정에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한국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해 R&D(연구개발) 인프라에 확장에도 적극 나설 정도다. 램리서치는 이미 한국에 R&D센터를 운영 중이며, AMAT도 관련 시설을 완공할 예정이다.
반도체 품목 관세 리스크도 여전하다. 특히 반도체가 들어가는 모든 제품에 관세를 불일 수 있단 예측이 나오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 행정부가 지난 12일 철강·알루미늄 관세 포고문 부속서를 수정해 냉장고·세탁기 등의 파생 품목에도 50% 관세를 적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부분의 전자제품에 반도체가 탑재되는 만큼 관세가 본격화될 땐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반기 수출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무역협회 '2025년 상반기 수출입 평가 및 하반기 전망' 보고서를 보면 상반기 견고했던 반도체 수출은 하반기 5%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PC·스마트폰 등 범용 IT 기기 수요가 한풀 꺾이고 D램 등 메모리 단가가 정체될 거란 예상이다.
복합적인 변수에도 불구하고 실제 타격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반도체 장비 제한 조치가 공식화된 게 아닐뿐더러 이미 국내 반도체 업체가 관련 대응책을 마련해놨다는 거다.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으로 고성능 AI 반도체 수요가 유지되면서 업계 상황도 안정적일 거란 평가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장비 규제가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거론된 정책인 만큼 국내 업체들도 이미 다양한 대응 방안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