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미디어를 단순히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이해하는 관점을 넘어, 지구의 지질학적 시간과 물질성이라는 급진적인 사유를 제시하는 책이 출간됐다. 저자인 핀란드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미디어 이론가인 유시 파리카가 미디어 이론의 지평을 확장한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가볍고 무형의 신호로 여겼던 디지털 미디어가 사실은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실리콘, 리튬, 콜탄, 희토류 금속 등 지구 내부의 광물 자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심원한 시간'(deep time)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현대 미디어 장치가 인류의 산업혁명 이후의 산물이 아니라 지구의 거대한 지질학적 역사 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통찰한다. 이는 미디어를 정보 이전에 '돌'이자 '광물', '지층'으로 재구성하며, 기술 진보 중심의 기존 미디어 담론을 비판적으로 전복시키려는 시도다.
그는 기술과 자연, 인공물과 지구 환경이 분리된 구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통해 생태적 미디어고고학의 새로운 지형을 탐색한다. 그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지구에서 채굴된 금속과 광물로 이루어진 완벽한 자연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동시대 미디어가 거대한 추출 기반 자본주의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디지털 시대의 '최신 기술' 이면에 숨겨진 폐기물과 잔해에 주목하며 이를 '좀비 미디어'라 명명한다. 이 책은 미디어의 물질성과 지구적 차원의 얽힘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미디어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제공한다.
△ 미디어의 지질학/ 유시 파리카 글/ 심효원 옮김/ 현실문화/ 2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