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베테랑에겐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자부심이었다. 이제 막 성장하는 유망주들에게는 큰 자신감을 안겨줬다. 한국 여자대표팀이 극적으로 쟁취한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트로피 이야기다.
신상우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은 지난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만과의 대회 최종전에서 2-0으로 이겼다.
1승2무(승점 5)가 된 한국은 중국·일본(이상 승점 5)과 승점이 같아졌고, 세 팀 간 맞대결 기준으로 전적과 골 득실까지 모두 동률이었지만 다득점에서 앞서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초대 대회 우승 이후 20년 만에 일군 감격스러운 정상 등극이다.
이는 여자 대표팀의 베테랑과 유망주들 모두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기에 더욱 값진 성과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신상우호' 엔트리는 오랫동안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어왔던 '노장'들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신인 선수들의 조합으로 이뤄졌다.
2006년 대표팀에 데뷔한 '20년 차' 지소연(34)을 포함, 김혜리(35), 장슬기(31), 이금민(31) 등이 중심을 잡고 케이시(18), 정다빈(20), 김신지(21) 등 14명의 2000년대생 선수들이 어우러져 호흡을 맞췄다.

지소연 등 노장들은 열악했던 한국 여자축구 현실 속 여자월드컵 본선과 아시안컵의 선전 등으로 나름의 '황금기'를 일궈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이들의 등장으로 한국 여자축구의 성적과 인기가 한 단계 도약한 게 사실이다.
다만 이들은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피지컬 좋은 세계와의 격차를 따라잡기엔 한계가 있었고 중국·일본·북한 등 강자들 틈새에서 아시아 정상도 쉽지 않았다.
아시아에 2장 주어지는 올림픽 본선 티켓은 한 번도 따지 못했고, 아시아 수준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느꼈던 2022년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중국에 2-0으로 앞서다 2-3으로 역전패, 눈앞에 뒀던 첫 트로피를 놓쳤다.
한 여자축구 선수는 "아시아 예선을 뚫지 못해 올림픽 본선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한 건 우리 나이대 선수들에겐 가슴에 한이 맺혀 있다"고 했다.
그 설움을 이번 우승으로 날렸다.
최고 베테랑 지소연은 국가대표 커리어 20년 만에 처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 선수 외 대부분의 선수가 긴 기다림 끝에 처음 정상을 경험했다.

이제 막 대표팀 커리어를 시작한 젊은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누구와도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장착할 수 있게 됐다.
언제나 따라잡아야 하는 입장이었던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주도적 경기를 하며 몰아쳤는데, 젊은 선수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정다빈은 강호 일본을 상대로 직접 동점 골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알렸고, 김신지와 김민지(22) 등도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대선배'들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항상 마지막엔 아쉬움과 후회를 남겼는데, 이들은 시작부터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출발한다.
지소연은 "베테랑 선수들이 잘 버텨주고 있고 젊은 선수들도 자극받아 올라와 주고 있기 때문에, 한국 여자축구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