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원이 10일 열린 KLPGA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확정한 직후 기뻐하고 있다. (KLPGA 제공)

(서귀포=뉴스1) 권혁준 기자 = "갑자기 실력이 좋아진 게 아니다."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누린 고지원(21)이 이렇게 말했다. 정규투어 '조건부 시드'로 출전한 대회에서 정상에 섰기에, 누가 봐도 '대반전'이지만 그 밑바탕엔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고지원은 10일 제주 서귀포시 사이프러스 골프 앤 리조트(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10억 원) 최종 라운드에서 3언더파를 추가,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로 2위 노승희(24·19언더파 269타)를 두 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지난해 시드전 탈락으로 올 시즌 정규투어 출전이 자유롭지 못했던 고지원은, 이번 우승으로 2027시즌까지 시드를 확보했다.

특히 지난주 열린 오로라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준우승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향 제주에서 일군 우승이기에 기쁨은 더욱 컸다.


고지원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첫 우승을 고향에서 달성해 정말 기쁘다"면서 "당장 다음 주 드림투어(2부) 대회에 나설 예정이었는데 대회를 취소하게 된 것도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해까지 우승은커녕 '톱10'도 기록하지 못했던 고지원은 '조건부 시드'로 나선 올 시즌 오히려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6월 MBN 여자 오픈에서 공동 10위로 생애 첫 '톱10'을 달성했고, 지난주 준우승에 이어 이번 대회에선 우승의 간절함까지 해소했다.

고지원이 10일 KLPGA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 물세례를 받고 있다. (KLPGA 제공)

고지원은 지금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고지원은 "밖에서 볼 땐 갑자기 기량이 좋아졌다고 보일 수 있지만, 내 스스로는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시드전을 탈락했을 때도, 7월 롯데 오픈에서 컷 탈락했을 때도 그 대회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면서 "샷감도 올 초부터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고지원은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더 돋보이는 선수다. 스스로도 "주니어 시절부터 국가대표 한 번 못 할 정도로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은 안 했다"면서 "그랬기에 엄청 열심히 연습해 극복하려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이번 우승으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하고 싶다.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노력을 갖췄지만, 시드전 탈락 후엔 '멘탈'의 중요성도 깨달았다고.

그는 "작년까지는 쫓기듯이 플레이했고, 연습도 스스로를 혹사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하게 했다"면서 "그럼에도 성적이 안 나니 절망감이 있었는데, 건강한 마인드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마음을 다잡으니 시드전 탈락의 아픔도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다. 고지원은 "슬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괜찮았다"면서 "의식적으로 즐겁게, 재밌게 하려고 생각하니 공이 잘 안 맞아도 재밌더라"며 미소 지었다.

고지원(왼쪽에서 3번째)이 10일 열린 KLPGA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 가족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KLPGA 제공)

우승의 가장 큰 힘은 역시나 가족이었다. 그는 "묵묵히 믿어준 가족들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먼저 빛을 본 언니 고지우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고지원은 "언니가 잘되고 나는 안 될 때 부럽기도 하고 괴롭기도 했다"면서 "그래도 언니에겐 언제나 고마운 게 많다. 오늘도 마지막 홀 그린에 와서 보니 울고 있었다. 우승 직후엔 울면서 물 뿌리러 왔다"며 웃었다.

축구 선수를 꿈꾸는 남동생에 대해선 "동생이 맨날 언니는 우승했는데 나는 못 한다고 놀렸다"면서 "오늘 우승으로 누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동생에게도 좋은 기운을 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