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10일 박태환이 한국 수영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의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2008년 8월10일 '마린보이' 박태환이 한국 수영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불리한 신체 조건으로 동양에게는 불리하다는 세상의 편견을 깨고 당당하게 세계정상에 올랐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박태환은 주 종목인 남자 자유형 400m 출전해 3분41초86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두드리며 1위에 골인했다. 2위 장린(중국·3분42초44), 라슨 젠슨(미국·3분42초78)을 꺾은 그는 올림픽 도전 44년 만에 한국에 첫 수영 금메달을 안겼다. 동양인으론 72년 만의 남자 자유형 금메달이었다. 또 종전 장린이 가지고 있던 아시아 신기록도 깼다.


박태환은 자유형 200m에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에 밀려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1분44초85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메달만 무려 31개… 한국 수영의 간판이 된 '마린보이'

네게의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박태환의 기록이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사진은 2010년 11월14일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박태환의 모습. /사진=오센

1989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박태환은 어려서부터 기관지가 약해 의사로부터 수영을 권유받았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온 동네 수영장을 찾은 그는 수영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중학교 3학년 박태환은 2004 아테네올림픽 대표로 출전해 당시 선수단 중 가장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가 됐다. 그는 자유형 400m 예선에 출전했으나 너무 긴장한 탓에 부정 출발을 했고 어이없는 실격패를 당했다.

첫 올림픽에서 쓴맛을 본 박태환은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해 담력과 기량을 키웠다. 그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남자 자유형 100m 은메달, 자유형 400m, 자유형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아시안 게임 첫 메달을 땄다. 대회 직전인 2007 세계선수권 대회 400m 정상에 오르며 예열을 마쳤고 올림픽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스타가 된 박태환은 비슷한 시기에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을 딴 김연아와 함께 올림픽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선수가 됐다. 당시 국민들은 '하계올림픽은 박태환, 동계올림픽은 김연아'를 떠올리곤 했다.

이후 박태환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추가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선 자유형 400m와 200m 은메달을 추가했다.

한국 하계올림픽에서 딴 수영 메달 5개 중 4개를 박태환이 책임졌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김우민이 자유형 400m 동메달을 획득하기 전까진 12년 동안 유일한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

그러나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며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를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큰 성과를 남기지 못했고 2019년부터 잠정 은퇴했다.

박태환은 올림픽 메달 4개, 아시안게임 메달 14개, 세계선수권대회 메달 5개 등 총 23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