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대기근의 절망을 딛고 전 세계에 흩어졌던 아일랜드인들은 이제 그들이 낳은 인적 네트워크와 불굴의 정신으로 새로운 경제적 도전에 맞서고 있다. 사진은 성 스테판 그린(St. Stephen's Green) 공원 입구에 서 있는 전설적인 포크 그룹 더 더블리너스(The Dubliners)의 보컬 루크 켈리(Luke Kelly)의 모습. 루크 켈리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열정적인 음악과 삶은 아일랜드 문화유산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사진=김성아 기자


아일랜드 더블린 시내, 성 스테판 그린(St. Stephen's Green) 공원 입구에 서 있는 한 동상이 눈길을 이끈다. 덥수룩한 머리에 질끈 감은 눈꺼풀, 기타를 매고 마치 포효하듯 노래하는 모습의 전설적인 포크 그룹 더 더블리너스(The Dubliners)의 보컬 루크 켈리(Luke Kelly)다. 아일랜드의 국민 가수 루크 켈리의 음악은 길거리와 펍, 더블린 어디에서든 울려 퍼진다. 특히 그의 히트곡 '아덴라이 들녘'(The Fields of Athenry)의 슬픈 선율이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대화 속에서도 이내 귀를 기울인다.

기타와 밴조, 바이올린이 엮어내는 아이리시 포크 리듬은 정겹지만 그 뒤편에 짙게 드리운 알 수 없는 '한'(恨)의 정서가 느껴진다(특히 한국인에게는). 이 정서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아일랜드의 가장 아픈 역사, '감자 대기근'(Great Famine, 1845~1849)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이 노래는 비록 후대에 쓰였지만, 대기근 당시 굶주림으로 가족을 위해 옥수수를 훔쳐야 했던 아일랜드 민초의 뼈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비극의 시대를 노래한 이 곡은 이제는 위기를 극복한 아일랜드인의 불굴의 정신을 상징한다. 아덴라이 들녘이 현재 아일랜드 축구, 럭비 국가대표팀의 응원가로 불리는 이유다. 대기근의 절망을 담은 이 노래가 오늘날 희망과 연대의 동의어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스며든 이 한의 근원은 무엇이며 그토록 처절했던 절망은 어떻게 불굴의 응원가로 승화될 수 있었을까.

절망의 디아스포라, 미국을 움직이는 '숨은 손'으로 돌아오다

감자 대기근 7년(1845년~1852년) 동안 약 100만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150~200만명은 고향을 떠났다. 사진은 아일랜드 더블린 커스텀 하우스 키(Custom House Quay)에 위치한 '대기근 기념 조각상'(Famine Memorial).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이민을 떠났던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사진=김성아 기자


'슬픈 아일랜드' 등 아일랜드 역사서에 따르면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감자마름병균(Potato Blight)이 아일랜드 전역을 휩쓴 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당시 아일랜드 하층민의 주식이자 생계 수단이던 감자가 병충해로 완전히 사라지면서 아일랜드의 생계 기반은 일시에 무너졌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비극의 핵심은 감자마름병 자체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충분한 양의 곡물 식량이 비축돼 있었지만 기근이 발생하자 식민지배국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의 참상을 외면했다. 영국 정부는 '자유시장 경제' 논리를 앞세워 아일랜드에 남아 있던 옥수수와 밀 같은 곡물을 굶주리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풀지 않고 본토로 계속 수출했다.

1845년부터 1852년까지 7년 동안 약 100만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대기근 직전 약 800만명에 달했던 아일랜드 인구는 급감했으며 21세기까지도 본래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인들은 이 모든 고난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굶주림을 피해 이민선에 몸을 실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더 멀리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이민의 물결도 급증했다. 기근 기간에 연평균 25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인구가 대서양 횡단 여객선에 몸을 맡겼다. 선내 환경은 무척이나 열악해 '관선'(Coffin Ship)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혹독했던 아일랜드 디아스포라(Irish Diaspora)였다.

아일랜드 디아스포라는 민족에게 가장 큰 상처였지만 동시에 이들은 곧 전 세계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렸다. 아일랜드 본국의 인구는 현재까지 약 530만명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에 흩어진 아일랜드계 혈통은 최대 8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후손은 오늘날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 영어권 주요 국가에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아일랜드 이민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그리고 조 바이든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23여명이 아일랜드계 혈통이다. 세계 전역의 정보기술(IT) 산업과 금융가에서도 아일랜드계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이들은 모국을 잊지 않았고 이는 훗날 아일랜드 본국이 절실했던 순간, 강력한 연대와 지원의 기반으로 훗날 아일랜드 본국을 유럽의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 불리게 만든 숨겨진 동력이 됐다.

굶주림의 한을 담은 아덴라이 들녘이 오늘날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제2의 애국가로 불리며 연대의 상징으로 승화된 비결은 디아스포라의 힘에 있는 것이다. 미국발 보호무역 압력 등 새로운 도전이 아일랜드 앞에 놓여있다. 아일랜드가 아덴라이 들녘을 목청껏 소리높여 부르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