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협상 대상자가 있다고 말한 적 없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김광일 홈플러스 공동대표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그동안의 모든 설명과 해명을 무너뜨렸다. 인수 협상 중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실체는 없었다. 수만 명의 노동자와 협력업체, 입점 점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경영자는 책임 대신 계산기를 꺼냈다. 위기를 자초한 당사자가 위기관리자로 나선 상황이어서 홈플러스 청산 우려는 커지고 있다.


김광일 대표는 "스토킹호스 방식이 실패해 법원이 공개매각으로 전환하라고 했다"고 설명하며 매각 가능성을 50% 수준으로 평가했다. 이는 경영 실패의 결과이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 간담회에서 유력 협상자가 있다고 말해놓고 불과 20일 만에 공개입찰로 전환했다"며 "결국 인수자가 없으면 청산으로 가겠다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 대표의 발언은 홈플러스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깊은 절망을 안겼다. 그동안의 협상 과정이 실체 없는 시간 끌기였다는 의혹은 이제 분노로 번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 폐점, 고용불안에 시달린 끝에 청산이라는 낭떠러지 앞에 섰다.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노동자들은 배신감을 넘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시민들 역시 대형마트의 몰락이 단순한 유통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탐욕적 자본이 지역경제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과정임을 목격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더 이상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수많은 가정의 생계와 지역 상권의 기반이 걸린 사회적 인프라다. 그 붕괴는 곧 생활의 붕괴다.


홈플러스는 MBK파트너스(MBK)가 인수한 이후 '세일즈 앤 리스백' 방식으로 알짜 점포를 매각하고 재임대하며 부동산 수익을 극대화했다. 3조원 이상의 자산을 매각해 인수금융을 상환했지만 시설 투자나 신규 출점은 없었다. 2016년 이후 신규 점포는 단 한 곳도 열리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전략 실패에 대해 국감장에서 아무런 반성도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그는 MBK가 투자한 국내 18개 기업에서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대표이사, 공동대표, 사내이사, 비상무이사까지 직함은 다양하다. 김 대표는 "겸직 때문에 홈플러스에 집중하지 못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홈플러스의 위기에는 "몰랐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는 경영자로서의 무책임을 넘어 구조적 방관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감장에서 김병주 MBK 회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반복했으나 구체적 계획은 없었다. 김 대표 역시 "영업상 비밀"이라며 협상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수만 명의 생계가 걸린 상황에서 경영진은 침묵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추석연휴를 기해 접어둔 천막을 다시 펼치려고 한다. 김광일 대표의 자택 주차장에는 수십억 원대 슈퍼카가 줄지어 서 있다. 그는 "수집품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그 말은 생존권을 외치는 홈플러스 노동자들 앞에서 공허하게 울린다. 슈퍼카의 엔진음은 노동자와 시민의 목소리를 덮어서는 안 된다.

기업은 단순히 수익을 창출하는 기계가 아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구성원의 삶을 지켜야 할 공동체다. 김 대표는 경영자로서, 그리고 MBK의 부회장으로서 홈플러스의 정상화를 위한 실질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 노동자들의 삶은 그의 말 한마디, 결정 하나에 흔들리고 있다. 김광일은 그 목소리를 듣고 응답해야 한다. 국감 등판을 마쳤으니 책임을 다한 것일까. 김 대표로선 억울할 수 있겠으나 '기업 사냥꾼'이라는 야비함 대신 경영인으로서 품격을 보여야 한다.
박정웅 산업2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