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 등 서울 15개 자치구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가운데 토지거래허가제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사진은 19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뉴스1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해 서울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묶는 초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서울시 등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는 반발이 거세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 등 15개 자치구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학계도 토지거래허가제의 집값 안정 효과보다 왜곡 현상을 우려해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22일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중구 시청에서 15개 자치구 구청장과 '정부 10·15 주택 안정화 대책 철회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의 즉각 철회 또는 최소화 ▲정부·서울시·자치구 3자 정책협의체 구성 ▲규제 완화 중심의 대책 마련 등 요구사항이 담겼다.


이번 성명에는 서울 25개 구 중 송파·광진·동대문·양천·영등포·동작·서초강동·종로·서대문·강남·용산·도봉·마포·중구 등 15개 구가 참여했다. 국민의힘 소속 14개 자치구와 무소속 용산구가 동의했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10개 자치구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강석 협의회장(송파구청장)은 "이번 대책은 풀뿌리 민주주의 기관인 자치구와 사전 협의 없이 서울시 전체를 규제지역으로 지정, 지방자치의 원칙을 훼손했다"며 "부동산 가격 안정은 규제가 아니라 공급 확대와 재개발·재건축(정비사업) 등 주택 행정에 대한 합리적 규제 완화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호 협의회 사무총장(광진구청장)도 "토지거래허가는 사유재산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재"라며 "주민 불편을 가중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철회하고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서울시 "정책 방향 전면 재검토 필요"

서울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묶는 초고강도 부동산 대책에 대해 서울시 등 관련 지방자치단체들이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시청에서 서울시구청장협의회 구청장들이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배석한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정부가 시장 현실을 외면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사전 협의나 실질 논의가 없었다"며 "대책 시행 불과 이틀 전 서면으로 시의 의견을 요청했고 시의 입장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부시장은 "이번 대책은 단기 거래를 위축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주택 시장의 경직과 전·월세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며 "과도한 규제는 실수요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이주비와 분담금 증가로 정비사업 추진 동력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규제가 초래할 부작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정부와 서울시, 자치구가 주택 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 불편과 민원 대응 현황에 대한 질의에 현장 전문가로 참석한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는 매우 강도 높은 규제"라며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허가를 받으면 4개월 내 입주해야 한다. 기존 주택도 처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거나 입주 의지가 있어도 여건상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때문에 구청 민원이 폭증하고 행정 부담도 감당하기가 어렵다"며 "송파구의 경우 허가 건수가 1년 새 3배 이상 늘었고 담당 공무원들이 업무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토지거래허가제를 무기한 유지할 수 없고 해제 시점마다 부동산 시장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반복되는 만큼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허제 실효성 논란 재점화

앞서 정부는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이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확대 지정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일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10·15 대책 발표 직전 서울 전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일방 통보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학계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주택시장 안정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서울 강남 국제교류복합지구(잠실·삼성·대치·청담동) 일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전후 변화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첫 지정 당시 거래량 감소와 일정 수준의 가격 안정 효과가 나타났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약화됐다.

박기주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지정·해제 기준이 불명확하고 한 번 지정되면 해제가 쉽지 않다"며 "기존 주택의 가격 안정 수단으로 활용되는 토지거래허가제를 본래 취지인 개발이익 규제 장치로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