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 사태, 롯데카드 해킹사고 여파 등을 계기로 사모펀드(PEF)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PEF가 기업 가치를 높여 회생을 돕거나 새로운 성장을 지원하고 효율적인 기업 경영을 이끌어내는 순기능은 도외시한 채 단기 이익 회수에만 열을 올려 오히려 기업 경영에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대기업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책임 이행에는 한발 비껴나있는 PEF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급성장 하는 국내 PEF 시장… 대기업 위상 넘다
지난 1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는 김병주 MBK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동안 수차례 국회의 부름에도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해오던 김 회장은 이날 처음으로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저희는 대기업이 아니고 전 총수가 아니다"라고 했다.김 회장이 이끄는 MBK의 경제적 위상은 이미 대기업을 넘어선 지 오래다. 현재 MBK가 운용하는 운용자산(AUM) 규모는 약 44조원에 달하며 투자기업들의 매출 합계는 60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 재계 순위 11위인 신세계그룹의 지난해 전체 매출이 35조5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를 능가하는 규모이다.
MBK의 성장은 국내 PEF 시장의 폭발적으로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 말 기준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약정액은 153조6000억원으로 국내 법상 PEF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2005년 4조원 대비 40배 가까이 커졌다. 2005년 15개였던 국내 PEF 수도 지난해 말 기준 1137개까지 증가했다.
국내 M&A 거래에서 PEF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2010년대 초 10% 미만에서 2020년대 들어 30~40%로 확대되며 국가 경제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다.
PEF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규제 완화에서 기인한다는 평가다. 특히 전문투자형 PEF 운용사 설립 절차가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대폭 완화되고 자기자본 요건까지 10억원으로 낮아지면서 시장이 급팽창했다.
여기에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수익률 확보를 위해 대체 투자를 늘리면서 PEF에 대한 위탁 자금(LP 자금)을 집중하는 전략이 성장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다.
영향력은 큰데 견제는 미미… 규제 움직임 본격화
PEF의 경제·사회적 위상과 영향력이 커졌음에도 규제와 책임은 여전히 '소수 전문 투자자'를 위한 '사모(私募)'의 틀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는 소수 전문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투자자들이 위험을 스스로 감수한다고 간주돼 공모펀드에 비해 공시 의무가 낮다.금융당국이 사모펀드를 자본시장 혁신과 유동성 공급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해 규제를 완화해 온 점도 오히려 맹점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다. PEF는 경영이 부실한 기업을 인수해 자본과 효율적인 운영 전략을 투입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벤처 기업 등 성장이 필요한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하여 가치를 높인 후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기도 한다.
거버넌스가 무너진 기업에는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하고, 투명한 지배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등 여러 순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PEF가 기업 정상화보다는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집중하는 것이 드러났다. 비용 절감에만 치중하거나 자산 매각, 과도한 배당 등으로 기업을 부실하게 만들고 과도한 구조 조정, 인력 감축, 고용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MBK가 홈플러스 인수 과정에서 활용한 차입매수(LBO) 방식이 홈플러스에 막대한 부채를 전가해 결국 점포 폐쇄, 구조조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결국 노동자, 협력업체, 주주 등 사회 전체가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MBK 외에도 한국 산업 기반을 이루는 주요 기업들을 보유한 PEF가 많아 자금을 운용하는 민간 자본의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 역시 지속되고 있다. '소수 전문 투자자를 위한 최소 규제'라는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당국도 PEF 제도를 손보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