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 점포, 협력 업체 등에 수많은 피해를 양산한 MBK파트너스-홈플러스 사태의 배후에는 국민연금도 있었다. 국민연금은 2015년 MBK가 조성한 홈플러스 인수 프로젝트 펀드(투자처를 특정한 펀드)에 약 6000억원가량을 출자했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운용해야 할 공적 기금이 기업에 부채를 떠넘기고 고용 불안을 초래한 사모펀드(PEF)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데 대해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국회입법조사처 '2025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MBK는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국민연금으로부터 6121억원을 투자받았다. MBK는 인수 과정에서 홈플러스의 자산과 수익능력을 담보로 금융권 차입을 일으키는 차입매수(LBO) 방식을 활용했다. 이후 MBK는 홈플러스의 핵심 자산인 주요 점포를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현금을 확보했고 이 자금은 투자자들에게 고배당으로 지급되거나 부채 상환에 사용됐다.
국민연금, MBK '부동산 장사' 알면서 투자… 투자 자금 회수도 불투명
알짜 점포 매각 등으로 성장 잠재력이 훼손된 홈플러스는 지난 3월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에 전가하는 PEF의 '먹튀' 행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의 노후자금도 직접 피해를 입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보통주 295억원은 전액 손실이 유력하고 5826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역시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문제는 MBK가 홈플러스 인수 당시 점포 매각 자금으로 부채를 상환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국민연금이 인지하고도 투자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험보고서에는 MBK가 인수 초기부터 부동산 매각을 통한 현금 회수를 핵심 전략으로 설정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까지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이 LBO 방식을 활용하는 PEF에 출자하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LBO 방식의 사모펀드와 관련해 기관투자자들이 자금을 제공하는 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에 맞냐는 점에 대해 2015년부터 계속 지적해왔다"는 견해를 밝히며 논란에 힘을 실었다.
90조 PEF투자, ESG엔 눈 감은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MBK 펀드에 투자한 배경에는 '수익률 중심의 운용 기조'가 있다. 국민연금은 연금 고갈 우려에 대응하고 고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해왔다. 특히 PEF는 일반 공모펀드보다 운용이 자유롭고 목표 수익률이 높아 대체투자 전략에서 핵심 축(올해 기준 45.6%)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PEF 출자 금액은 2020년 약 33조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약 95조원대로 세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대체투자 과정에서 책임투자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주식이나 채권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ESG 요소를 평가해 가점을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PEF가 포함된 대체투자 분야에는 이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해외 주요 연기금이 대체투자·PEF 출자 시 운용사 선정부터 ESG 심사를 제도화하고 관여 후 개선이 없으면 철수하는 것과 대비된다. 미국의 최대 공적 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CalPERS)은 PEF 운용사를 선정할 때 ESG 정책 이행 여부와 분쟁·소송 이력, 인권·노동 관련 리스크를 필수 심사 항목으로 포함한다. 투자 이후에도 정기적인 ESG 보고를 의무화하고 기준 미달 시 신규 투자 제한이나 재약정 거절 등의 제재를 가한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PEF 위탁 운용사 선정 기준을 수익률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아닌 '수익의 질'도 보는 방향으로 개편했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구술 평가 과정에서 운용 성과의 세부 항복에 '운용 수익의 질'을 신설한 것이다. 이는 단순 수익률이 아닌 투자 대상의 질적·양적 기업가치 제고,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건전한 자본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기관전용 PEF는 일반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자 수(49인 이하)가 제한적이어서 운용 내역의 공시 의무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에 국민연금이 강화된 선정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투자 이후 PEF의 세부 운용 과정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처럼 대규모 자금을 다수의 위탁운용사에 맡기는 구조에서는 개별 운용사가 ESG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이행하는지를 지속 검증하고 제재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펀드 계약 단계에서부터 LBO 제한, 고용 안정성 유지 등 ESG 관련 의무조항을 계약상 명문화하고 정기 실사제와 재약정 제한 등 이행 확보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국민연금 대체투자 영역의 책임투자 적용 지침과 규율이 부족하다"며 제도적 개선 필요성을 지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성북을)은 머니S에 "운용사가 LBO를 추진할 경우 출자자와 금융위원회에 인수 구조와 자금 운용 내역을 보고하도록 했다면 국민연금이 MBK파트너스의 탐욕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기금의 대체투자에 대한 스튜어드십코드 적용 계획을 밝힌 만큼 국민연금 스스로도 적극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