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기업 육성을 위해 출범한 코스닥이 '부실기업 피난처'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슷한 목적으로 설립된 미국 나스닥과 일본 그로스는 육성형 시장으로 성장한 반면 코스닥은 투기 중심 단타 시장으로 변질됐다는 우려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8일 기준 코스닥 전체 상장사 1801개 중 1000원 미만 동전주는 160개에 달한다. 2023년 말 125개였는데 35개가 늘었다. 전체 상장사 중 동전주 비율도 2023년 7.32%에서 8.88%로 증가했다.
동전주가 증가한 것은 코스닥 상장 기업 부실화가 누적된 결과로 풀이된다. 현재 동전주 중 투자주의 환기종목에 해당되는 기업은 13개다. 전체 투자주의 환기 종목(29개) 중 동전주 비중은 44.82%에 달한다.
업계에선 부실기업과 동전주 증가가 코스닥을 단타형 투기 시장으로 전락하게 했다고 본다. 주당 가치가 낮고 시가총액이 적은 동전주의 경우 투기 거래자들의 담합 대상이 쉽고 가격 변동성도 크기 때문이다.
반면 나스닥과 그로스의 동전주 비중은 각각 약 2.6%, 3%로 두 시장 대비 코스닥 상장 기업들의 부실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상장 후 관리, 나스닥·그로스-코스닥 차이 갈랐다
나스닥과 그로스, 코스닥의 차이는 상장 후 시장이 기업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차이를 갈랐다는 평가다. 출범과 제도적 목적은 비슷했지만 상장 이후 관리와 투자문화, 정책 지원의 차이가 시장의 명운을 달리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나스닥의 경우 특정 종목 주가가 1달러 미만인 상황이 30일 이상 지속되면 거래소가 '비준수 통보'를 발송한다. 이후 최대 360일 내 주가를 복구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다.
지난해에는 해당 조건을 더욱 강화한 규정 개정안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해당 개정안은 기업이 중복으로 유예 기간을 부여받게 되면 추가 유예기간 부여 없이 바로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해당 기업은 경고나 추가 통보 없이 즉시 거래정지와 상장폐지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부실기업은 솎아 내고 성장기업은 보호하는 시장 구조를 뚜렷하게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그로스 시장도 상장 전에는 수익성보다 성장 잠재력을 우선 평가하지만 상장 후에는 철저한 관리를 진행한다. 그로스는 상장 후 자본 비용과 주가 인식 공시를 의무화했고 미공시 기업은 6개월 내 개선하지 않으면 퇴출 대상이 된다.
반면 코스닥은 이 같은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장 심사 단계에서는 기술력과 재무 건전성까지 증명해야 하지만 상장 후에는 관리 체계가 사실상 부재하다는 것.
거래소는 자본잠식률과 감사의견, 영업손실 등을 기준으로 '관리종목' 지정 제도를 운영하지만 지정만으로 상장폐지로 이어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정된 기업은 대부분 1년의 개선기간을 부여받고, 사유가 반복돼도 재유예가 가능하다. 공시 지연이나 불성실 공시 기업에 부과되는 '투자주의·환기종목' 제도도 존재하지만, 경고 수준에 그쳐 투자자 보호나 부실 정리에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정은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코스닥 시장은 주요 관리 종목 지정 및 상장 폐지 요건으로 재무적 기준 충족 요건과 종목 거래와 관련된 거래량 요건을 두고 있다"며 "형식적 상장폐지 종목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코스닥 상장폐지 요건이 글로벌 규제 요건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코스닥, 성장 기업 육성 목적 찾아야
시장에서는 '성장 기업 육성 시장'이라는 코스닥이 본래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를 위해 일본처럼 상장 후 공시 의무 등을 제도화 하고 미국처럼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관리 절차에 들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현행 국내 제도에서 미흡한 기업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장 이후 일정 주기마다 재무구조, 영업성과, 지배구조 개선 계획 등을 제출하게 하고 개선 이행 여부를 검증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단기 실적에 따른 주가 관리보다 장기적인 재무건전성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시장 신뢰를 높일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부실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고 성장성 있는 기업을 육성하는 방안만이 국내 증시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지속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김민기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주식시장의 매력도를 높이려면 성숙 기업을 중심으로 잉여자본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기업의 질적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책 당국은 정책 일관성과 법, 제도 집행력을 높이고 투명한 정보 공시와 공정한 거버넌스 확립을 통해 시장의 신뢰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