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현재 지하경제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지하경제는 흔히 매춘, 마약, 장물, 밀거래 등 불법적인 경제 활동을 일컫는다.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탈루 소득을 지하경제라고 지칭한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부터 부족한 재원을 채우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상과제로 삼고, 국세청과 관세청에게 미션을 전달했다. 과세당국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탈세 세력을 잡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사채시장은 물론이고, 주류·제약 업계를 상대로 강도 높게 세무조사를 벌였다. 최근에는 고소득 전문직 및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기획 세무조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지하경제 규모는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 일부는 국세청 조사의 허점을 악용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지하경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성지인가. <머니위크>에서 현장취재를 통해 전모를 알아봤다.
"카드로 결제할 경우 부가세 10%가 더 붙는 거 아시죠? 오늘 현금으로 수술예약을 하시면 원장님께 말씀드려 더 깎아 드릴게요."
강남역에 위치한 A성형외과병원 상담직원의 설명이다. 최근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환으로 고소득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국민참여 탈세감시제도도 대폭 개편했다. 이에 따라 성형외과 탈세현장을 신고해 포상금을 노리는 '세파라치'까지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 일부 성형외과들의 탈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개인병원뿐 아니라 손꼽히는 대형병원에서도 할인을 미끼로 한 현금유도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오히려 과세기준 강화를 위해 최근 개정, 시행된 부가가치세법을 역이용해 고객들이 현금결제하도록 부추기는 실정이다. 지난해 개정돼 올 1월부터 시행된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미용목적의 성형의료행위에는 부가세가 포함된다. 성형외과들은 이를 이용해 고객에게 "부가세를 내지 않으려면 현금결제를 해야 한다"고 유도한다. <머니위크>가 성형외과 탈세현장을 심층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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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지난 4월8일 기자는 국내 유명 대형성형외과를 찾았다. 평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상담고객들로 붐볐다. '성형관광'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더니 내국인보다 성형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인 고객 수가 더 많아 보였다.
우선 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실을 찾았다. 병원이력, 개인정보 등을 적고 개인정보활용 동의서에 서명을 마치면 접수절차가 완료된다. 사전에 상담예약을 했지만 대기시간이 제법 길었다. 이십여분이 지나자 '실장'이라는 명찰을 단 여직원이 호명한 후 상담실로 안내했다.
한층 전체를 상담실로 사용하는 이 병원은 곳곳에 작은 방들이 배치돼 있었다. 상담실 내부로 들어가자 직원은 방금 전 기자가 작성한 차트를 꺼내 놓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의사를 만나 구체적인 성형진단을 받은 후 다시 상담실로 돌아오자 직원의 본격적인 회유(?)가 시작됐다. 기자가 받은 코 성형 견적은 300만원이다. "고객님 수술날짜를 언제로 희망하시나요? 5월 황금연휴로 생각하시면 지금 예약하셔야 돼요. 일단 비용 10%만 먼저 예약금으로 내시면 원장님께 말씀드리고 260만원까지 해드릴게요."
카드결제가 가능하냐고 묻자 잠시 기자의 표정을 살피던 직원은 다시 말을 이었다. "카드나 현금결제 모두 비용은 같아요. 그런데 카드로 결제하시면 부가세 10% 더 붙는 것 아시죠? 작년부터 법으로 시행됐어요. 오늘 예약하고 현금으로 결제하시면 260만원만 내면 돼요. 아마 다른 병원 가셔도 비용은 비슷할 거예요."
이 직원은 "성형비용을 현금과 카드로 반반씩 결제할 경우에도 카드로 결제한 금액에 대해서는 부가세가 부과된다"며 "가능한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현금결제가 얼마나 이뤄지는지 목격하고 싶었지만 수납창구가 다른 층에 위치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 병원에서 지난해 2월 수술한 제보자는 "수납창구에 지폐계수기가 비치돼 있을 정도로 현금결제규모가 크다. 상당수의 고객들이 현금결제를 하고 할인받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신사동에 위치한 또다른 대형병원인 B성형외과를 찾았다. 상담과정은 앞서 방문했던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병원은 과거에 탈세로 적발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상담직원은 상담 초반부터 "결제수단에 따른 비용차이는 없다"고 못 박았다.
◆현금유도 더욱 심한 개인병원
이번엔 '성형메카'로 불리는 압구정동을 찾았다. 골목 곳곳에 성형외과 간판을 건 개인병원이 눈에 띄었다. 사전조사 없이 무작정 병원 몇곳을 선택해 상담을 받아봤다. 상담이 이뤄지는 절차는 대부분 비슷했다.
다만 작은 병원일수록 대기시간이 짧은 반면 상담실장과의 면담시간은 평균 5~10분가량 더 길었다. 길어진 시간만큼 수술예약을 유도하기 위한 설득이 상당히 집요했다.
기자가 찾은 4군데 개인병원 중 결제수단별로 차이를 두지 않는 병원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이들 병원 모두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 최소 3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할인해준다고 밝혔다.
젊음의 거리인 신촌과 홍대 일대는 어떨까. 앞서 찾은 강남 인근의 성형외과와 다른 점은 1만~3만원의 상담비를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상담비는 반드시 전액 현금결제해야 한다. 이들은 당일 수술예약을 하고 계약금을 송금하면 상담비를 면제해준다는 단서를 붙였다.
과연 이들이 현금으로 받은 상담비는 소득신고처리를 제대로 하는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한 병원코디네이터(상담실장)에 따르면 "상담비는 병원소득으로 회계 처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통상 상담사에게 인센티브 형식으로 40~50%가량 지급된다"라고 설명했다.
후유증으로 인한 재수술 부가세… 병원마다 제각각
올 1월 시행된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35조에 따르면 미용목적의 성형의료행위는 부가세가 부과된다. 그러나 후유증으로 인한 재수술의 경우 부가세 부과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일부 병원들이 이러한 내용을 고객에게 고지하지 않고 부가세 적용을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이다. 한 국내유명 대형성형외과에서는 수술목적에 따른 부가세 적용 차이를 고지하지 않음은 물론, 부가세를 미끼로 현금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국세청의 판단은 어떨까. 국세청은 이에 대한 기준이 없어 병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까지 재수술 부가세 관련 판례가 없기 때문에 기준이 모호하다. 현재로선 납세의무자인 병원들이 수술 목적을 판단해 환자에게 부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올 1월 시행된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35조에 따르면 미용목적의 성형의료행위는 부가세가 부과된다. 그러나 후유증으로 인한 재수술의 경우 부가세 부과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일부 병원들이 이러한 내용을 고객에게 고지하지 않고 부가세 적용을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이다. 한 국내유명 대형성형외과에서는 수술목적에 따른 부가세 적용 차이를 고지하지 않음은 물론, 부가세를 미끼로 현금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국세청의 판단은 어떨까. 국세청은 이에 대한 기준이 없어 병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까지 재수술 부가세 관련 판례가 없기 때문에 기준이 모호하다. 현재로선 납세의무자인 병원들이 수술 목적을 판단해 환자에게 부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