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사진=이미지투데이
남한산성. /사진=이미지투데이

산토끼의 반대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십여가지나 된다. 죽은 토끼, 알카리 토끼, 집토끼, 들 토끼, 바다 토끼, 판 토끼, 끼토산…. 단답형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어리둥절할 정도로 많다.
‘얼음이 녹으면…’ 뒤에 붙는 말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물이 된다’고 하는 답은 고지식한 것이고 ‘봄이 온다’는 답은 천진난만한 어린이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말년인 군인은 ‘제대한다’고 생각할 것이며 ‘가래질한다’는 말은 천수답 농부의 다짐일 터다.

사람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행동도 변한다. 그래서 ‘4월(양력 5월)엔 하느님 되기도 어렵다’(作天難作四月天)는 말이 인구에 회자됐다.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는데 나들이 가는 사람은 맑기를 원하고, 익어가는 보리는 뜨거운 햇살을 기다리지만 뽕잎 따는 낭자는 구름만 끼고 비 안 오기를 바라니 어느 장단에 맞출지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현대판 주전파vs주화파 갈등

문재인 대통령의 2019년 8월은 그 어느 때보다 덥고 답답했을 것이다. 아베 일본정부의 경제보복에 대해 내놓은 ‘이에는 이’라는 강경책을 놓고 국내 여론이 엇갈렸다. ‘경제의 대일 의존’을 더이상 지속하지 말고 이번 일을 진정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기회로 삼자는 긍정론과 부품소재 산업 자립도가 아직은 낮아 일본과 정면대결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부정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또 하나의 논쟁거리를 내놓았다. 일본이 보복조치를 철회하고 대화의 장에 나온다면 손을 잡겠다며 유화 제스처를 보내면서 북한과의 평화경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게 그것이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가 나온 바로 다음날 미사일을 또 두발 쐈다. 지난 5월부터 8차례, 16발째였다. 게다가 문 대통령 경축사에 대해 “삶은 소가 앙천대소(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할 일”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내놓았다.

야당도 문재인 정부가 안보와 경제를 모두 망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광복절 74주년을 기념하는 날 서울시청과 광화문 일대에는 아베 일본정부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시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대책 및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나와 시위를 벌였다.

주장만 있고 목소리만 높을 뿐 효과적인 방안을 찾으려는 진정한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기울어가는 명과 부상하는 청을 앞에 놓고 ‘숭명반청’으로 청의 침략을 초래하고 남한산성에 포위돼서도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말싸움을 벌인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광복 직후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찬탁)과 반대(반탁)로 나뉘어 각각 다른 정부가 서고 급기야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른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라고나 할까.

◆‘중공군 공포’ 벗어난 리지웨이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원수는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 질주해 평양까지 진격하자 교만에 빠졌다. 중공이 수차례 중공군 참전을 경고하고 1950년 10월19일부터 은밀하게 압록강을 넘어 30만명이 넘는 대군이 북한으로 진입한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던 국군 1사단과 미군 제1기병사단이 운산에서 11월1, 2일 중공군 39군(115·116·117사단)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크리스마스 전까지 전쟁을 끝내고 미군 병사를 귀가시키겠다’는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11월24일 시작했다.

하지만 ‘적의 형태를 드러내되 나는 감춘다’(形人而我無形)는 손자병법대로 밤에 이동하고 낮에는 은거하는 철저한 은폐로 기고만장한 연합군을 깊숙이 끌어들여 포위섬멸하겠다는 중공군 전략에 빠져들어 ‘청천강전투’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이때 미군 2사단은 군우리-순천의 좁은 계곡길을 따라 퇴각하면서 양옆 산에서 퍼붓는 중공군 공격으로 궤멸상태에 빠지는 ‘인디언 태형’이란 치욕을 당했다.

이 패배로 미군과 국군은 ‘중공군 공포증’에 빠졌다. 쉽게 점령했던 평양을 너무 쉽게 내줬고, 어렵게 수복했던 서울도 다시 빼앗기는 눈물의 1·4후퇴를 했다. 최후 방어선을 평택-안성-단양-삼척을 잇는 선으로 물리고 금강선까지 밀릴 경우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비밀계획까지 세웠을 때 리지웨이 장군이 구원자로 등장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워커 장군에 이어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리지웨지 장군은 중공군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해 냈다. 보급차량이 없었던 중공군은 병사들에게 마대자루에 담은 식량을 몸에 두르고 공격에 나서게 했는데 식량이 떨어지면 공세를 멈췄다. 이 기간이 대략 7~10일이었다. 중공군의 1·2차 공세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런 약점을 파악함으로써 ‘중공군 공포증’을 극복하고 전세를 뒤집었다.

전투에서 승패는 군사수와 장비 또는 우연적 요소에만 좌우되지는 않는다. 적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아군의 강약점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지피지기를 갖춰야 위험에 빠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리지웨이 사령관이 확인해 주었다.

◆‘내로남불’과 탈북모자 아사

북한에서 배곯음과 인권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배부르게 잘살아보려고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어머니와 아들이 임대아파트에서 굶어죽은 일이 일어났다. 은행통장에 남아있던 3858원을 인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물 한방울 쌀 한톨 없는 임대아파트에서 냉장고에 고춧가루만 남겨 놓은 채 죽었고 두달 뒤에야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일어나서는 안될,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는데도 ‘왜 굶어죽을 지경이었는데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 ‘문 걸어 닫고 집에서 죽는 걸 누가 아느냐’, ‘나라가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다 질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참으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내로남불’의 지나침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장관 청문회를 앞두고 위장전입, 논문표절, 부동산투기, 조세회피 등이 또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여당 시절에 이른바 ‘비리후보자’를 방어하던 야당은 송곳 검증을 외치고 야당시절 비리 부풀리기에 나섰던 여당은 ‘후보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날 스스로 쓴 글과 인터뷰한 방송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말 바꾸기를 하려니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버젓하다. 정치란 게 그런 것인가 보다 하다가도 참 안쓰럽다.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마저 잃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기우이기를 바란다. 괴롭히던 불볕 무더위가 물러가고 품격 있고 인정 많으며 사랑이 살고 생각이 쌓이는 가을 문턱에서 착한 국민들이 더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 본 기사는 <머니S> 제607호(2019년 8월27일~9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