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 /사진=뉴스1 조태형 기자
쌍용자동차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 /사진=뉴스1 조태형 기자
5000억원. 쌍용자동차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마힌드라그룹이 필요하다고 밝힌 금액이다. 대주주인 마힌드라는 올해부터 손실을 차근차근 줄여 나가자며 대규모 투자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희망고문’이었다. 마힌드라는 최근 대규모 투자계획을 철회했다. 업계에선 한차례 지원거절을 당한 마힌드라가 자금 마련을 위해 한국 정부를 재차 압박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직원 담보로 한국정부 압박?

마힌드라는 쌍용차 경영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5000억원 중 24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지만 말을 바꿨다. 쌍용차에 400억원만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영난에 처했다는 것이 이유다. 외신에 따르면 마힌드라는 지난달 코로나19 여파로 현지에서 단 한 대의 차도 팔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연초 자신들의 ‘SOS’를 거절한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 1월 쌍용차 이사회 의장인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은 예고 없이 방한해 산업은행 등과의 대화를 시도한 바 있다. 당시 마힌드라 측은 쌍용차 경영정상화를 위해 26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산은 측은 마힌드라의 요청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산은의 태도에 마힌드라는 전략을 수정했다. 쌍용차 회생을 위한 투자계획은 한달 운영비에도 못 미치는 400억원으로 대폭 축소됐다.

판매부진, 유동성 위기로 벼랑 끝에 선 쌍용차는 대규모 투자 없이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다. 쌍용차의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유동부채(9951억700만원)가 유동자산(4183억5900만원)보다 5767억4800만원이 많다. 내년 1분기 말까지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도 3899억3296만원에 달한다. 당장 오는 7월까지 해결해야 하는 차입금도 900억원이다.


급한 불을 꺼야하는 쌍용차는 결국 유휴자산 매각 등에 나섰다. 지난달 부산물류센터를 처분해 약 26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마힌드라가 약속한 400억원도 유동성 위기 해소에 쓰일 예정이다. 현재 200억원이 지급됐고 나머지 금액은 이달 말까지 해결된다는 것이 쌍용차 측 설명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지난달 부산물류센터 매각을 완료했고 유휴자산 매각을 검토 중”이라며 “회사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지난해부터 사무직 안식년제, 복지 축소 등 자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당장 차입금을 갚기보다 만기를 연장하는 방향을 원하는 모습이다. 아직 산은과의 접촉은 없지만 통상적으로 만기 한달 전부터 연기 등을 논의하는 만큼 6월부터 대화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마힌드라가 쌍용차 직원을 담보로 정부를 압박하는 형국이 됐다. 쌍용차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총 직원 수는 정규직 4881명, 기간제 근로자 31명 등 총 4912명이다. 여기에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쌍용차가 생계를 책임지는 직원 수는 수만명에 달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연초 마힌드라의 지원요청을 거절한 정부 입장에서는 타이밍을 놓친 꼴”이라며 “일자리 문제에 예민한 현 정부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 문제에도 개입해 발목을 잡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철수설이 제기된 한국지엠에 정부가 8000억원을 지원한 전례가 있다”며 “마힌드라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쌍용자동차 평택 본사 건물에 달린 쌍용차 로고. /사진 뉴스1 조태형 기자
쌍용자동차 평택 본사 건물에 달린 쌍용차 로고. /사진 뉴스1 조태형 기자

공적자금 투입 외엔 답 없어

쌍용차는 1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존폐 위기에 몰렸다. 지난해 3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개발한 코란도는 흥행에 참패했다. 쌍용차의 올해 1분기 경영실적은 판매 2만4139대, 매출액 6492억원, 영업손실 986억원, 당기순손실 1935억원이다. 판매와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각각 30% 이상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으로 해외부품 수급에 문제가 생겼고 생산라인 가동에 차질을 빚었다는 것이 쌍용차 측 설명이다.
1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쌍용차. 이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이다. 쌍용차의 1분기 연결 재무제표의 감사를 맡은 삼정KPMG는 “계속기업으로서의 의문이 든다”고 손사래를 쳤다.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기업의 존속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유동성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개발비 부족으로 제품 경쟁력도 낮아졌다.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이다. 판매량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흑자전환의 꿈은 실현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 올 하반기 대형SUV(스포츠형 다목적차) G4렉스턴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모델과 소형SUV 티볼리의 롱바디 버전인 티볼리 에어를 재출시할 계획이지만 동급 차종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 기아자동차 셀토스, 르노삼성자동차 XM3, 한국지엠 트레일블레이저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다.

일각에선 정부지원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쌍용차가 매물로 나와도 수년간 적자에 허덕일 것이며 판매실적도 저조한 기업을 사들일 곳이 없어서다. 결국 쌍용차와 수만명의 직원들이 살기 위해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학계의 입장이다.

하지만 경쟁력을 잃은 쌍용차에 자금을 계속 투입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정부가 추진 중인 기간산업안정기금이다. 정부는 지난 20일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계획을 발표했다. 총 차입금 규모가 5000억원 이상, 근로자 300명 이상인 항공 및 해운업종을 우선 지원한다는 계획이지만 자동차 제조사들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쌍용차는 고민이 많으나 해결방법은 없는 상황”이라며 “공적자금 투입 외에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최악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6호(2020년 5월26일~6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