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는 2012년보다 더 행복해지겠죠? - 관악산 정상에서 아들 000 올림" 

"당신에게, 벌써 우리가 만난지 35년. 결혼은 29년차 당신 때문에 내 인생과 삶은 은총이 됐고 더 풍성해 졌어요~. - 결혼 29주년을 기념하며 남편이"

장대비가 잠시 멈춘 지난 8월22일. 연인과 가족의 명소인 북악스카이웨이의 정상 팔각정에는 모처럼 갠 날씨가 반가웠는지 많은 이들이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서울의 북쪽 언덕에 오르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과 함께 색색깔의 커다란 우체통 3개가 눈에 띈다. 일반 우체통의 몇배에 달하는 크기와 함께 '느린 우체통'이라는 표지판은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방문객들은 이 우체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느린 우체통은 가족과 연인에게는 추억의 장소요,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돼준다.

1년 뒤 받는 러브레터

사진_류승희 기자


올해 4월 팔각정에 들어선 '느린 우체통'은 우체국에서 운영하는 정식 우체통이 아니다. 팔각정을 운영하는 업체가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만든 것이다. 특히 편지를 보내면 1년 후에 도착하는 점이 고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속도경쟁시대에 '느린 우체통'은 무언의 울림을 전해주는 듯하다.

팔각정 관계자는 "심심한 이곳에 문화적인 요소를 입히고자 만들게 됐다"며 "고객에게 좋은 추억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설치 후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느새 1500여통의 편지가 모였다. 하루 평균 10여통의 편지가 쌓이는 셈이다. 이 편지는 수신 날짜를 기록해 분류 보관했다가 1년 후 날짜에 맞춰 배송된다.

이 우체통을 이용하려면 3000원의 비용을 내야 한다. 하지만 불만을 표하는 고객은 거의 없다. 팔각정 관계자는 "1년 동안 유지하고 관리하는 비용과 발송비용 등을 따졌을 때 비싸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1년 뒤 받는 러브레터

사진_류승희 기자


편지를 쓰던 한 방문객은 "지금은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지만 1년 후라면 보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편지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객은 "그저 드라이브 하러 나왔다가 이런 우체통이 있는 것을 보고 추억을 만들 겸 편지를 보냈다"며 "1년 후에 받게 될 편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느린 우체통은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외에 인천 영종대교를 비롯해 전남 완도군 청산도 범바위, 경부고속도로 청원휴게소(서울 방향), 경남 거제시 거제해양파크 등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통상 지자체나 특정 업체에서 이 우체통을 운영하는데 얼마 전에는 전문업체가 생기기도 했다.

올해 5월 오픈한 '타임레터'는 느린 우체통을 콘셉트로 한 회사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우체통은 1년 뒤 배달되는 일반 느린 우체통과 달리 '타임 키퍼'시스템으로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 배송되게끔 했다. 신영도 타임레터 대표는 여행사 직원이던 시절 남극에서 편지를 썼던 게 두달이 지나서야 도착한 것을 보며 이 사업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당시 편지를 받고 왠지 모를 감동을 느꼈다"며 "여러 테스트를 통해 시스템을 갖춰 오픈하게 됐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제2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