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주식투자를 하면서 절대 맞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갖가지 이유로 투자한 주식이 폭락했더라도 시장에 남아있다면 반등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걸어볼 수 있지만 상장폐지가 되면 그나마의 희망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적과 분석자료 등을 뒤지며 애써 고른 주식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상장폐지 되는 주식의 특성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태풍이 닥치기 전 징후가 보이는 것처럼 상장폐지의 신호도 미리 나타나기 마련이다.
 
◆잦은 경영권 변동, 상폐 '뇌관'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 사이 상장폐지된 47개사의 상장폐지되기 전 주요특징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들 기업은 최대주주 등 경영권 변동이 잦았다.

최대주주 또는 대표이사가 2회 이상 변경된 기업은 각각 20개사(42.6%), 28개사(59.6%)였다. 최대주주 및 대표이사가 바뀌지 않은 기업은 6개사(12.7%)에 불과했다. 최대주주나 대표이사의 잦은 변경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영을 곤란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횡령·배임 혐의가 있던 기업은 12곳으로 이중 11개사에서 경영권 변동이 있었다. 경영권 변동이 내부통제 부실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목적사업이 수시로 바뀌는 모습도 보였다. 상폐기업 절반에 가까운 22개사(46.8%)가 목적사업을 변경했고 이중 16개사는 기존사업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추가했다.

증권사 스몰캡 연구원은 "일정수준 이상의 자금조달을 해줄 만한 기존사업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낮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재무구조 등에 악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타법인 출자도 두드러졌다. 상장폐지 47개 기업 중 23개사(49%)는 자기자본의 평균 61%를 타법인에 출자했다. 공급계약 공시를 빈번하게 한 후 정정공시로 계약규모가 축소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또 증권신고서를 통한 공모보다는 주로 간단한 소액공모로 자금을 조달했다. 소액공모는 10억원 한도 내에서 자금을 공모할 때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하고 간소화된 공시서류만으로 자금조달이 가능토록 한 제도다.

아울러 감사보고서가 적정의견이면서 특기사항이 기재된 경우가 38개사(80.9%)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사의견이 적정이라도 감사인이 계속기업 불확실성 관련 특기사항을 기재한 경우에는 상당수가 2년 이내에 상장폐지 됐다"며 "감사보고서를 이용할 때 계속기업 불확실성 특기사항 기재여부를 유의해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기사항이란 감사의견에는 영향이 없지만 이해관계자의 의사결정에 참고가 될 사항으로 감사인이 판단해 감사보고서에 기재한 것이다.
 
상장폐지 '위기 신호등' 봐라


◆분식회계, 퇴출 지름길

횡령·배임이나 세금포탈 은폐, 재무요건 미달에 의한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회계분식을 하는 경우에도 상장폐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일정규모 이상의 회계부정 또는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한 경우에는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된다. 거래소는 ▲증권발행제한 4월 이상이거나 ▲임원해임권고, 검찰고발 통보 등의 조치를 받거나 ▲횡령·배임금액이 자기자본의 3% 또는 10억원 이상인 경우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들어간다.

분식회계 징후가 있는 기업의 상당수는 회계부정을 이유로 임원해임권고나 과징금 등 행정조치를 부과받을 뿐 아니라 상장폐지로 이어진다.
 
금감원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분식회계 징후가 있는 기업으로 분류해 감리한 기업 289개사 중 24.9%에 해당하는 72개사가 중조치 제재를 받았다. 이중 65.3%인 47개사는 상장폐지됐다. 중조치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과징금 부과 또는 증권발행제한 2월 이상의 조치를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실례로 A사의 경우 2010년 5월 횡령·배임 공시를 한 후 금감원의 감리를 통해 매출 허위계상 등이 밝혀지면서 증권발행제한 10월, 임원해임권고, 검찰고발 등의 중조치를 부과받았다. A사는 횡령·배임 공시 후 2년 만인 올해 5월 상장폐지됐다.

횡령·배임과 함께 잦은 최대주주 변경도 분식의 징후가 된다.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 감사인으로부터 적절의견을 받지 못하거나 적절의견을 받았더라도 중요한 취약점이 발견된 기업도 분식을 의심해봐야 한다.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보고서 미제출 기업도 너무 믿어서는 안된다.

감사의견을 비적정에서 적정으로 변경해 감사보고서를 재발행한 경우나 중요한 벌금, 과태료, 추징금 또는 과징금 등을 부과받은 것도 분식의 징조로 볼 수 있다. 증권신고서 심사 시 정정명령을 3회 이상 받았거나 3년 연속 영업손실 발생 후 산출 방식을 바꿔 흑자로 전환된 기업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또 우회상장기업이나 사업보고서 점검결과 미비사항이 너무 많은 경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이밖에도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후 10일 이내에 제출하지 않았을 때와 감사의견 부적정인 경우도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경우, 자본잠식률이 2년 연속 50% 이상이거나 2년간 매출액이 일정요건(유가증권 50억원, 코스닥 30억원)에 미달하는 경우도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상장폐지 '위기 신호등' 봐라


◆공시에 징후 숨어 있어

분식회계 또는 상장폐지 기업을 미리 가려내는데 왕도는 없다. 하지만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을 이용하면 분식이나 상장폐지 징후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횡령·배임 혐의와 최대주주변경은 전자공시 내 수시공시나 상장공시 내 투자자유의사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자공시를 통해 감사보고서(개별)에 있는 '내부회계관리제도 검토의견'을 살펴보면 내부회계관리제도 검토의견이 '비절적의견'이거나 중요한 취약점이 발견된 기업을 가려낼 수 있다.

3년 연속 영업손실 발생 후 산출방식을 변경해 흑자로 전환한 경우는 감사보고서에 있는 주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벌금·과태료 등의 부과 여부는 '벌금 등의 부과' 공시를 이용하면 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