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어디서 왔니?"

"난 공기 좋고 물 맑은 강원도 평창에서 왔어."
"나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청정구역으로 꼽히는 DMZ에서 왔어."
"우리가 가장 멀리서 온 것 같은데. 우리는 바다 건너 제주도와 울릉도에서 왔어."
"천만에, 우리가 가장 멀리서 왔지. 우리는 백두산에서 왔단 말이야."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생수. 저마다 청정지역이라 꼽히는 곳에서 생산된 이 생수들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식음료업계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이지만 생수시장은 예외다. 지난 2000년 1562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생수시장 매출은 2010년 3993억원, 지난해 540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6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국내 생수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자 경쟁에 뛰어든 업체가 70여곳이나 되고 브랜드는 100개를 넘었다. 이들은 수원(水原)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가 하면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 확대에 나서기도 한다.
 
오늘 당신이 마신 생수는 무엇입니까?
◆ 시장 선점 위해 혈투 벌이는 대기업

지난해 1~11월 기준(닐슨코리아 자료) 브랜드별 시장점유율은 제주개발공사와 광동제약이 함께 유통하는 '제주삼다수'가 42.4%로 1위를 유지했다.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PB 물량 제외)와 해태음료의 '강원평창수'가 각각 5.9%, 농심 '백산수'가 3.5%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국내 생수시장의 '절대강자'인 제주삼다수가 지난 2012년 말 새로운 유통사업자를 맞음에 따라 올해 생수시장의 판도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각 생수업체들은 사업 강화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특히 제주삼다수 유통권을 빼앗긴 농심은 지난해 백두산에서 공수한 백산수로 삼다수의 빈자리 채우기에 나섰고, 광동제약을 제주삼다수의 새 유통사업권자로 맞이한 제주개발공사와 대형마트·SSM(기업형슈퍼마켓)·편의점 등 그룹계열사 유통망을 등에 업은 롯데칠성음료도 생수사업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주개발공사는 올해 제주삼다수의 국내외 판매량 목표를 지난해(61만3000톤)보다 9% 늘어난 67만1000톤으로 정했다. 제주삼다수의 해외수출량이 지난해 5200톤으로 비중이 작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로 국내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광동제약은 지난해 제주삼다수 매출이 연간 목표인 1000억원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추산하면서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 매출액보다 10% 이상 늘어난 수준으로 잡았다.

농심은 지난해 8월 중국 연변지역에서 운영 중인 생수 생산공장 근처의 부지(30만㎡ 규모)를 매입했다. 이를 통해 생산시설 증설에 나서 현재 연간 10만톤 규모인 생수 생산능력을 올해는 2배 이상 늘리고 향후 판매추이에 따라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농심은 또 지난해 TV광고 등 마케팅 활동에 힘입어 국내시장에서 백산수의 인지도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판단 아래 지난해 200억원대였던 백산수 매출을 올해는 500억원대로 2.5배가량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롯데칠성음료는 '아이시스 DMZ 청정수' 브랜드를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하는 록인음료를 인수했다.

서울 신세계 본점에서 선보인 이탈리아 프리미엄 탄산수 산펠레그리노와 미네랄워터 아쿠나 파나의 파바로티 에디션 한정판. /사진제공=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서울 신세계 본점에서 선보인 이탈리아 프리미엄 탄산수 산펠레그리노와 미네랄워터 아쿠나 파나의 파바로티 에디션 한정판. /사진제공=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 파이 커진 생수산업… 대기업 90%가 독과점

국내에서 생산되는 생수 브랜드는 100개가 넘고, 공장 소재지는 제주도에서 백두산까지 전국 팔도를 망라한다. 이처럼 생수업체 간 과열경쟁이 연출되는 까닭은 수돗물 불신 풍조가 뿌리 깊이 박혀 생수시장의 파이가 꾸준히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생수시장 규모는 5400억원대로 추산되며 야외활동 증대, 생수 안전성에 대한 인식 개선 등에 힘입어 올해도 10% 이상 두자릿수 성장률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생수시장의 90%는 대기업 6곳이 점유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42%로 1위 자리를 차지한 제주삼다수는 제주개발공사와 광동제약이 제조와 판매를 각각 맡고 있다. 나머지 생수시장도 롯데칠성음료와 해태음료, 풀무원, 동원F&B, 하이트진로음료 등 대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중소 생수제조·판매업체들이 나머지 10%의 시장을 두고 혈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의 프리미엄 생수 ‘한라수’. /사진제공=머니투데이 임성균 기자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의 프리미엄 생수 ‘한라수’. /사진제공=머니투데이 임성균 기자
◆ 떠오르는 '저가 PB'시장도 대기업이 독식

이처럼 국내 생수시장이 꾸준한 성장과 함께 '블루오션'사업으로 떠오르자 대형유통업체마저 생수시장에 대거 뛰어들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를 비롯해 CU와 세븐일레븐, GS리테일 등 편의점업체까지 자사 브랜드의 '생수'를 내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흔히 'PB상품'으로 불리는 이 생수들의 생산은 제조업체가, 판매와 유통은 대형유통업체가 맡는 구조여서 소비자 가격을 낮춰 급속 성장했다.

하지만 대형마트 브랜드에 가려졌을 뿐 제조사는 대부분 기존 생수시장을 점유한 대기업들이다. '아이시스' 등의 브랜드를 가진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같은 계열인 롯데마트의 '초이스엘'과 세븐일레븐의 '옹달샘물'을 비롯해 홈플러스의 '맑은샘물', 농협의 '깊은산맑은물', GS리테일의 '함박웃음맑은샘물' 등 무려 5개 유통사의 PB제품을 생산한다. 유통업체가 내놓은 PB 생수의 생산을 대부분 롯데칠성음료가 독식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소업체들은 진입장벽에 가로막혀 수익을 내는 곳이 많지 않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업체가 매출확대 등 외형은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순이익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성장 가능성이 커 너도 나도 물장사에 뛰어들고 있지만 대기업이 선점한 시장에서 중소업체들이 살아남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