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대형할인마트를 가야할지, 가격이 싼 전통시장을 찾아야 할지. 장을 보는 소비자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고민이다. 과거 대형마트가 없던 시절 전통시장에서는 북적한 사람들 틈 사이로 100원이라도 더 깎기 위해 상인과 가격 흥정을 벌이는 풍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더 깎으면 남는 게 없다”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양을 조금 더 얹어 주는 상인의 인심에 흥정은 마무리됐다. 상인들의 인심은 전통시장을 찾는 이용객에게 온기를 안겨줬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전통시장은 뒷전으로 밀렸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소비자에게 전통시장은 더 이상 장을 보기 위한 주무대가 아니었다. 장을 보기도 전 주차문제부터 속을 썩이는 경우가 잦았다. 화장실을 찾기 위해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 같은 이유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던 전통시장이 이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지자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점차 편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자료제공=강동구청
/자료제공=강동구청

◆늘어나는 전통시장 주차장

전통시장 이용객이 가장 많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부분이 주차문제다. 소상공인진흥공단 조사에 따르면 주차장은 전통시장 내 필요시설 선호도 조사에서 고객쉼터와 화장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주차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는 대형마트와 달리 일부 전통시장은 주차장을 갖추지 않은 곳이 아직 많아서다.

최근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자체가 적극 나서고 있어 전통시장 활성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서울시 전통시장에 주차장이 조성되는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구로구는 남구로시장이 인접한 구로4동 공동주차장 확대공사를 지난해 11월부터 진행 중이다. 남구로시장 이용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기존 지상 1층의 구로4동 공영주차장을 지상 1층, 지하 2층 주차장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 총 103억원의 예산(시비 69억원 포함)이 투입되는 이 주차장은 내년 주차면수 198면 규모로 다시 태어난다.

앞서 송파구는 지난해 12월 마천중앙시장 인근 민간주차장 부지를 활용해 40여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고객전용 주차장을 개장했다. 마천중앙시장에는 그동안 고객주차장이 없어 이용객이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송파구가 민간주차장 부지를 5500만원에 2년간 임대하면서 고객전용 주차장으로 활용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시장이용객은 물건을 구매할 때 받는 주차쿠폰으로 최대 1시간까지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성동구는 지난 2013년 사업비 89억원(시비 53억원 포함)의 예산을 들여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서문 공영주차장 144면을 개장, 운영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서울시 주관 주차환경개선 분야 사업평가에서 최우수구로 선정된 것. 전통시장 활성화와 쾌적하고 안전한 교통환경 조성으로 조금이나마 이용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지원한 결과다.

앞으로 서울시는 올해 예산 167억원을 투입해 전통시장의 주차시설사업 등을 지원한다. 우선 주차공간 100면을 보유한 3층 규모의 수유·수유재래·수유전통시장 연합주차장이 하반기 문을 연다. 성북구 정릉시장에도 주차장을 조성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매년 1∼2곳에 주차장을 추가로 건립하고 주변도로 주·정차도 허용하는 등 고객 편의를 높일 것”이라며 “오는 2018년까지 주차장 확보율을 100%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가속’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자체의 지원책은 주차시설뿐만이 아니다. 낙후된 시설을 현대화시키는 사업을 포함해 소비자가 보다 편리하게 전통시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한다.

동대문구는 지난해 12월 청량리전통시장 비·햇빛 가리개 개보수 공사를 완료했다. 비·햇빛가리개는 길이 140m, 폭 8m, 높이 6.8m 규모로 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설치됐다. 또 시장 내에는 LED 전광판, 방송시설 및 방범시설을 갖췄다.

강동구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매월 두번째, 네번째 일요일을 ‘전통시장 가는 날’로 정해 지역 내 시장을 찾아가면 최대 15%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전통시장 가는 날을 통해 상인에게는 매출증대를, 고객에게는 질 좋고 저렴한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또한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해 대형마트 위주의 쇼핑에 길들여진 고객에게 전통시장 이용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구로구는 지난 1월 가리봉시장을 전통시장으로 등록했다. 가리봉시장은 새롭게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으면서 상인·토지주·건물주의 동의서를 받아 시설현대화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가리봉시장은 지난 1월 기준 토지면적 7903.9㎡·점포 70개 규모다.

동작구 역시 사당골목시장 상인들과의 단결에 힘쓰고 있다. 사당골목시장은 현재 무등록 상태다. 동작구는 사당골목시장의 전통시장 인정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오는 4월까지 상점 분포, 상인현황 등의 실태조사와 의견수렴을 마치고 시장 측이 8월까지 전통시장 인정요건을 구비하면 오는 10월쯤 등록 처리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원 늘리는 중기청, 대형마트도 참여

지자체뿐 아니라 중소기업청도 지원규모를 늘리는 추세여서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더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대형마트 3사가 공동으로 지원키로 하는 등 상생을 실현하면서 전통시장 활성화에 의미를 더한다.

지난 1월 중소기업청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보다 35% 증가한 총 2822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특히 매년 이어진 활성화 대책이 실질적 성과달성에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자구노력을 기울이는 전통시장에 지원을 집중할 방침이다. 이상훈 중기청 소상공인정책국장은 “이젠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는 물론 다른 시장과 차별화될 수 있는 특색을 발굴해 특성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정부도 자구노력을 하는 전통시장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도 힘을 합쳐 전통시장 지원에 나섰다. 대형마트 3사는 지난달 인천광역시, 사단법인 인천상인연합회와 ‘사회공헌사업 업무협약’을 맺고 상생기금 1억원을 모아 인천시 재정난으로 중단위기에 놓인 ‘전통시장 우수상품 전시회’, ‘인천상인 한마음 전진대회’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대형마트 3사가 공동으로 지자체와 협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3사가 공동으로 전통시장을 지원하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기존 전통시장 지원사업 명맥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지원책도 계속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 합본호(제370·3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