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수확보와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2015 세법개정안’을 마련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소비여건을 강화하되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 부담을 늘려 세수를 확충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을 통해 연간 1조892억원 규모의 세수 증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발표된 개정안에는 정부가 지난 2개월간 경제활력을 높이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당초 경제회복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점쳐졌던 2분기가 메르스 충격을 받으며 분기 경제성장률이 5개월 연속 0%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경제를 이끌어오던 수출은 7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고 소비 역시 메르스 여파로 제동이 걸렸다. 결국 정부는 경제 활성화와 민생안정이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경제 활성화를 지원하는 내용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현재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중산·서민층 재산 형성, 소비여건 조성 등에 비중을 둔 점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다만 재정건정성 등을 고려했을 때 세수확충 측면에서는 미흡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고소득자·대기업 세 부담 늘려 세수 확보

먼저 정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실업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에 팔을 걷었다. 중소·중견기업이 청년 정규직을 채용하면 1인당 500만원(대기업 25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지원하는 ‘청년고용 증대 세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미 청년 고용절벽이 현실화된 점을 고려해 이 제도를 2017년까지 3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신규로 5명 이상 고용하는 창업기업에 대해 창업자금 증여세 과세이연 범위를 기존 30억원에서 50억원으로 확대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 등에 대해 소득세 감면율을 50%에서 70%로 높이기로 했다.


세법 개정안에는 소비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도 포함됐다. 5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끊기 위해서는 내수소비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체크카드 및 현금영수증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현행 30%에서 50%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체크카드와 현금영수증을 지난해보다 많이 쓰는 이들은 내년 연말정산 때 최대 수십만원 정도를 추가로 공제받을 전망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5 세법개정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유승관 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5 세법개정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유승관 기자

아울러 대용량 가전제품, 녹용·로열젤리·향수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폐지키로 했다. 내년부터는 5~7% 수준의 개소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명품백, 고가가구, 사진기 등도 500만원 미만일 경우 개소세 20%가 면제된다. 또 회사차를 업무용이 아닌 오너 일가의 개인 사유물로 사용할 경우 세금을 추가로 물어야 한다.

외국인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일정금액 이하 물품에 대해서는 사후환급 대신 사전면세를 허용키로 했다. 외국인관광객이 미용성형을 할 경우 부가가치세 사후환급제도도 1년간 도입한다. 창작공연에 대한 부가가치세도 면제된다.
내년부터는 저금리시대 국민들의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새로운 개념의 세제혜택 통합 금융상품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도 나온다. ISA는 계좌 하나로 예·적금은 물론 펀드,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자유롭게 바꿔가며 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득세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를 제외한 전 국민이 가입할 수 있고 연간 2000만원까지 저축이 가능하다. 만기 시 소득의 200만원까지는 비과세, 초과분은 9%(지방소득세 포함 시 9.9%) 저율 분리과세를 적용한다.

이와 함께 서민·중산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소형주택 임대사업자에게 적용하는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한 감면혜택을 확대하기로 했다. 일반임대는 감면율이 20%에서 30%로, 준공공 및 기업형 임대는 50%에서 75%로 각각 늘어난다.

정부는 과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안에 종교인 과세의 법제화도 추진키로 했다. 세법상 종교소득을 규정하고 소득이 많은 종교인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시행할 방침이다. 또 종교단체가 원천징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뒤 이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신고·납부토록 할 방침이다.

양도소득세 과세대상 대주주 범위도 확대된다. 내년 4월1일 이후 양도하는 부분에 대해 대주주 범위가 크게 확대되는데 코스피는 지분율 1% 이상에 시가 25억원 이상, 코스닥은 지분율 2% 이상에 시가 20억원 이상으로 조정된다. 코넥스는 기존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

중소기업 대주주의 양도소득세 세율도 올라간다. 현재는 중소기업의 경우 10%, 이외 기업은 20%(대주주가 1년 미만 보유할 경우 30%)다. 하지만 내년 1월1일 이후 양도분부터는 중소기업 대주주 세율이 20%(이외 주주는 10%)로 올라간다.

끝으로 정부는 ‘해외주식 투자전용펀드’를 신설, 국내주식형펀드와의 과세체계 불균형을 해소할 방침이다. 새로 도입되는 펀드는 해외주식에 60% 이상 투자하는 펀드로 운용기간 10년 동안 비과세혜택이 유지된다. 가입기간은 도입일로부터 2년으로, 가입 후 1인당 3000만원의 납입한도 내에서 언제든지 자금을 추가로 납입할 수 있다.

◆전문가들 “세수확충 방안 부족 아쉽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마련한 올해 세법개정안과 관련해 경제 활성화를 지원하는 내용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앞으로 재정건전성 확보 차원의 세수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업무용승용차 과세 합리화, 양도소득세 과세 강화, 종교인 소득 과세체계 정비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다만 세수결손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더 근본적인 세제개편이 필요하다. 연간 1조원 세수확충 효과는 필요한 증세규모에 크게 못 미친다”고 밝혔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역시 개별소비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종교인 과세에 대해서는 세제 정상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앞으로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소득세, 법인세 과표 및 세율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이번 세제개편안의 세수효과로는 앞으로 소요될 복지재원 마련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소득세·법인세 등 중요 세목의 세율, 과표구간 등 전체적인 틀을 바꾸는 논의가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