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는 유통사 몫" VS "제조사와 조율했다"

#. ‘나트륨 덩어리’ 컵라면 팔도 공화춘짬뽕 1위, 공화춘짬뽕 하루 나트륨 권고량 1.2배, ‘공화춘짬뽕·왕뚜껑’ 등 나트륨 일일 권고량 웃돌아…. 최근 발표된 ‘컵라면 제품 나트륨 함량’ 결과를 토대로 다수 언론매체가 보도한 기사제목이다. 해당 기사가 잇따라 게재되자 바빠진 건 팔도. 나트륨 컵라면 1위로 거론되는 공화춘짬뽕이 자사 제품이 아닌 GS리테일의 PB(Private Brand·자체브랜드) 제품이며 자신들은 제조만 담당했기 때문에 ‘팔도 공화춘짬뽕’이 아닌 ‘GS리테일 공화춘짬뽕’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팔도 vs GS리테일, 나트륨 PB제품을 놓고 벌어진 때아닌 책임 공방의 서막이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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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한 시민단체의 컵라면 나트륨 함량 조사에서 비롯됐다. 지난달 22일 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시중에 판매되는 12개 컵라면 제품 중 짬뽕류의 나트륨 함량이 과다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그중에서도 공화춘짬뽕이 나트륨 2328.5㎎을 함유해 시판 중인 컵라면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섭취 권고량 2000mg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 판 사람, 만든 사람 따로…공화춘짬뽕 주인은?

공화춘짬뽕이 나트륨 라면 등으로 연이어 거론되자 기색이 불편해진 건 라면제조업체 팔도다. 다수의 언론에서 공화춘짬뽕 앞에 제조사 이름인 팔도를 붙였기 때문. 해당 제품은 2006년 GS리테일의 편의점 GS25가 팔도와 손잡고 선보인 GS리테일의 PB제품이다. 팔도는 이 과정에서 공화춘짬뽕의 제조만 담당했을 뿐 나트륨 관련 책임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유롭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팔도 관계자는 “공화춘짬뽕은 GS리테일의 PB제품이기 때문에 팔도가 아닌 GS리테일 공화춘짬뽕이 맞는 표현”이라면서 “팔도는 GS리테일에서 제공받은 브랜드와 메뉴 등의 레시피대로 제조만 담당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제조사의 책임이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는 그렇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팔도 측의 해명에 GS리테일 측은 난색을 표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이런 콘셉트의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한 것은 맞지만 유통사 측에서 레시피를 정해 제공하긴 구조상 힘들다”며 “서로 조율을 통해 최종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슈 더하기] ‘나트륨 짬뽕’, 라면은 죄가 없다

PB제품의 경우 상품과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제품을 같이 고민한다는 게 유통사 측의 공통된 설명이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라면의 경우 유통사에서 레시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제조사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쪽 의견이나 노하우, 레시피를 받고 서로 피드백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물론 유통사 측에서 개발해 레시피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가인 제조사 측에서 제안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하나의 PB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피드백이 오가는 과정을 겪기 때문에 전적으로 어느 한쪽만의 제품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번 조사가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중대한 사안은 아니다. 나트륨의 경우 권고안에 따른 표기의무만을 지닐 뿐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PB제품 시장 자체를 놓고 볼 때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PB제품 시장이 커지면서 유사하거나 혹은 더 큰 책임 공방전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B상품 논란, 책임은 누가?

실제 유통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내 PB상품 비중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CU에 따르면 전체 매출에서 PB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3년 7.6%, 2014년 9.1%에서 지난해 약 30%로 급상승했다. GS25는 전체 매출 가운데 PB상품 매출 비중이 35.4%(지난해 10월 기준)에 달하고, 세븐일레븐도 지난해 10월 기준 35%선을 기록했다.

편의점업계는 경쟁적으로 PB상품 개발에 몰두하고, 제조사는 PB상품 제조를 확대하며 새 수익 창구로 활용한다. 논란이 된 팔도의 경우에도 라면제조업체 중 가장 전략적으로 PB제품을 확대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말 기준 팔도의 PB상품 비중은 라면상품 전체 비중의 10%에 달한다.

편의점업계 다른 관계자는 “오뚜기 등도 PB제품 제조에 나섰지만 라면시장점유율에서 밀리는 팔도의 경우 어설픈 입지 특성상 PB제품 제조에 더 적극적인 게 사실”이라면서 “팔도가 NB(제조업체 브랜드)대신 PB제품을 미는 정책을 쓰면서도 이번 조사에서 한발 빼는 모습을 보여 향후 PB시장 입지가 좁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우선적으로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유통사 한 관계자는 “순수한 OEM이 아닌 이상 제조사랑 협의하기 때문에 연대로 가는게 맞다”면서 “만약 제조 과정에서 이물질이 섞였거나 다른 원재료를 사용했다면 100% 제조사 측 잘못이지만 레시피 등 제품 스펙에 대해서는 시제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서로 맛보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공동책임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제조사 측 한 관계자는 “PB제품은 대부분 유통사에서 맛을 픽스하기 때문에 제조사의 권한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유통사 이름을 달고 나오긴 해도 제조사에서 만들기 때문에 책임은 공동으로 지는 게 옳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책임 비중은 유통사에 더 크게 있다”면서 “PB제품을 만드는 데 있어 제조사는 ‘을’ 입장이기 때문에 유통사의 입맛에 최대한 맞춰 제품을 만들고, 레시피에 있어서도 제조사에서 먼저 태클을 걸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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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는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남 탓’ 식으로 팔도가 책임을 떠넘기기식으로 일관한 것도 문제지만, 애초 협업 과정에서부터 양사 간 책임이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았던 게 논란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PB제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기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421호·제42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