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손님이 와서 외국어 메뉴판을 내놓으면 한국어 메뉴판도 같이 달라고 하는 경우가 생겼어요. 몇몇 식당에서 바가지를 썼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들이 어느 식당을 가든 의심하고 보는 거죠.”

명동 한 식당 종업원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최근 들어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음식의 정량이나 가격 등에 의심을 품는 일이 많아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명동상권 자체가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장기적으로 관광객들이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가야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텐데 잘 모르는 관광객에게 사기치고 바가지 씌우는 몇몇 양심없는 업주 때문에 명동상권은 사실상 위기예요. 저라도 그런 대접을 받으면 다시는 안오고 싶을 겁니다.”

서울 중구청과 외식업중앙회 중구지회, 관광경찰들이 지난 4일 서울 명동거리에서 ‘정직한 음식값 받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서울 중구청과 외식업중앙회 중구지회, 관광경찰들이 지난 4일 서울 명동거리에서 ‘정직한 음식값 받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바가지’와 전쟁 치르는 관광지

중국의 노동절과 일본의 골든위크가 겹친 이달 초, 수많은 관광객이 명동과 동대문 등 서울의 관광중심지를 찾았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지역상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동대문과 명동상권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일부 상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과도하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바람에 관광객들의 경계심이 커져 그들의 소비가 위축됐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언론이 한국관광의 부정적인 면을 잇따라 보도하면서 경계심이 더 커졌다. 중국 최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웨이보’에는 최근 한국관광에 대한 부정적인 리뷰가 쏟아졌다. 대부분이 불친절과 바가지를 지적했다. 한 중국인이 노점에서 김밥 한줄을 먹고 1만원을 냈다는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기사화됐다.

이밖에 중국언론은 한국의 식당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전용 메뉴판을 따로 만들어 바가지를 씌운 사례나 가짜 제품을 유명브랜드의 화장품으로 속여 판매한 사례 등을 보도했다.

일본의 한 방송사 또한 한국인의 불친절함과 바가지요금을 직접 체험한 내용을 여과 없이 방영하기도 했다. 일본인 관광객에게 음식값을 부풀리고 택시비를 10배가량 받는 등의 사례가 적나라하게 전파를 탄 것. 이 사례들이 알려지며 우리나라 관광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과 일본 관광객의 불신이 커졌다.

웨이보에 게재된 한국관광 불만글. /사진=웨이보 캡처
웨이보에 게재된 한국관광 불만글. /사진=웨이보 캡처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청이 상인들의 몰지각한 행위를 막기 위해 나섰다. 경찰청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등과 협업해 관광경찰을 출범했다. 불법행위를 근절해 한국관광의 질적 수준을 높이겠다는 목적이다. 관광경찰은 현재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동, 이태원, 동대문, 인사동, 홍대입구, 청계천, 시청 주변 등에 배치돼 관광지 범죄예방과 외국인 관광객 대상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외국인 관광객의 관광불편사항을 처리한다.
관광경찰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장 많은 민원이 제기되는 분야는 쇼핑, 택시, 숙박관련 사항이다. 한국인보다 옷을 비싸게 산 경우, 품질미달의 제품을 판매한 경우, 택시나 콜밴 등이 부당한 요금을 요구한 경우, 인터넷 예약 시 확인한 숙소와 실제 숙소가 판이하게 다른 경우 등 다양한 민원이 제기된다.

관광경찰 외에도 서울시내 9개 관광특구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서도 ‘관광불편처리센터’를 운영하며 외국인 불편사항을 접수받는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담당자가 센터에 근무하며 관광경찰, 특구 내 상인들로 구성된 명예관광보안관과 협조해 관광불편신고를 접수하고 중재·처리한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신뢰 잃은 한국, 무조건 의심하는 관광객

명동 관광불편처리센터 관계자는 “최근에는 고의로 부당이익을 취하는 신고 건이 줄어든 반면 의사소통에서 오는 오해나 사소한 실수 건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한 관광객은 닭갈비집에서 1인분 주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센터직원이 나서서 “숯불이 사용되는 만큼 2인분 이상 주문만 가능하도록 미리 고지했으며 한국인도 똑같다”고 설명하기 전까지 이 관광객은 외국인에게 부당하게 매출을 올리기 위해 2인분을 강요한 것으로 여겼던 것.


비록 오해로 인한 해프닝이었지만 한국관광에 대한 ‘신뢰 실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이미 관광객 사이에서 한국은 ‘따지지 않으면 바가지 쓰는 나라’로 각인된 셈이다.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특히 조심하는 것은 택시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나라 택시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바가지를 씌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택시요금체계를 빠삭하게 공부해오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최근 관광불편처리센터에 찾아온 다른 관광객은 구글맵에서 검색한 것보다 많은 택시요금이 나왔다며 택시가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역시 사실을 알고 보니 요금차이는 불과 1000원 수준이었다. 길이 막히다보니 시간에 따라 미터기가 올라간 것인데도 계속 바가지요금이라고 주장해 센터 측이 중재하는 데 애먹었다.

센터 관계자는 “지나치게 피해의식을 가진 관광객도 종종 보인다”며 “한국여행에 바가지 피해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객관적으로 불공정한 행위가 아님에도 피해를 주장하는 외국인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